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레 상궁전(upper place) 로비에는 커다란 기둥 네 개가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각 기둥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를 형상화 한 남성상이 조각되어있는데, 제 눈에 들어온 것은 헤라클레스가 발로 딛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두 개의 기둥에는 헤라클레스 발치에 육면체의 돌이 있었고, 나머지 기둥에는 잘린 나무의 밑동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작가가 나무 밑동을 벽돌과 동급으로 여긴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나무가 잘린 표면, 즉 나이테 부분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느 한 면은 나무 가운데가 썩어서 구멍이 생긴 것을 표현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서류를 돌돌 말아 넣은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이테에 고스란히 많은 정보를 축적해가는 섭리를 상기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나이테는 나무와 풀을 구별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입니다. 나무줄기의 껍질 안쪽에는 풀에는 없는 ‘형성층’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형성층에서 매 해 세포분열을 하여 나무줄기가 굵게 생장해가지요. 그리고 이 나이테의 폭(생장폭)은 당시의 여러 가지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계절 변화가 뚜렷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계절에 따라 세포 크기와 밀도 등이 달라집니다. 연중 광합성을 하는 우리나라의 상록침엽수에서 그 차이가 또렷해지는데, 나이테는 형성 시기에 따라 추재와 춘재로 구분합니다. 추재는 가을, 겨울에 만들어진 부위로 간격이 좁고 색도 짙습니다. 춘재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봄과 여름에 활발한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져 간격이 넓고 상대적으로 옅은 색을 띱니다. 이렇게 춘재와 추재를 한 묶음으로 하여 ‘한 살’로 헤아립니다. 그래서 나이테의 개수를 세면,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나이테에는 당시의 생육 환경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저장되어있습니다. 기후조건이 광합성과 물질대사에 좋지 않은 때에 만들어진 나이테(춘재+추재)의 폭은 좁고, 양호한 기후조건에 만들어진 나이테의 폭은 넓습니다. 뿐만 아니라 숲속에 나무가 빼곡하여 나무간의 공간 경쟁이 심한 곳에서 형성된 나이테는 폭이 좁습니다. 반면 나무 주변의 경쟁목이 사라지면 나이테 폭이 급증하기도 합니다.
나이테의 폭은 목질과 관련 있습니다. 폭이 균등하게 자란 나무는 그 자체로 큰 힘도 잘 견디는 구조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폭이 균일하지 않은 경우 나무를 활용하는 데에는 추가 공정이 필요하지요. 따라서 목질이 좋은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무의 생장 정도와 숲속 밀도를 고려하여 적절히 솎아 베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나이테의 폭을 결정짓는 공간경쟁 유무와 본디 나무의 생장 잠재력을 여러 가지 수학식으로 소거하여 기후요인만 남기고 나면, 나이테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기후환경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나이테의 성분(가령, 탄소동위원소함량)을 분석하면 당시 나무가 가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의 여부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테에는 산불에 그을린 자국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나이테를 통해 산불이 난 시기도 알 수 있습니다.

먼 옛날 누군가 기대어 갔거나 어루만진 손길, 그 온기를 나이테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서 가만히, 그러나 역동적으로 생명활동을 하며 조금씩 자라고 있는 나이테는 그야말로 세월을 담은 ‘빅데이터 저장고’입니다.

박고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임업연구사로서 우리나라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 높은 산의 침엽수가 후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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