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년. '바르게' 바라보기

가을을 닮은 중년
히브리인들은 ‘가을’을 ‘스타드’라고 불렀다. ‘스타드’는 ‘씻어버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가을을 단순히 곡물을 거두는 수확기만이 아니라 탐욕으로 오염된 품성을 씻어버리는 ‘성찰의 시절’로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년은 가을을 참 많이 닮았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까지 볼 수 있는 시력을 갖춘 시절이기에 자신의 인격 안에 붙어있는 ‘더러운 이끼’들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다. 또한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한다’는 ‘원모심려(遠謀深慮)’가 가능한 귀중한 시절이며, 삶의 품격과 품위를 장착(裝着)한 ‘황금시기’이기도 하다.

중년, 흔들리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중년은 흔들리고 있다.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결과 숙면(熟眠)보다는 불면(不眠)의 밤에 눌려 살게 된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고 진단한다. 사실 중년의 삶이 ‘존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으로 전락한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래서 우울증과 의욕상실 같은 병리현상이 유독 중년에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중년을 위협하는 세 가지 적(敵) 중, 첫째는 ‘지위와 직급에 대한 불안’이다.
신분제도가 철폐된 이 시대에는 사회적 지위와 직급이 그 신분을 대신하여 각 개인의 가치가 결정되며, 그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도 발생한다. ̒자녀학업̓과 ̒부모부양̓이라는 두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평균 이상의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년은 자신의 직급과 지위에 유독 집착하는 것이다.

둘째,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꿈을 꿀 수 없다는 불안’이다.
중년들에게 부과된 삶의 책무는 내 자신이 아닌 내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자신의 중년을 ‘꿈을 삭제한 사막 같은 삶’으로 사는 것은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니다. 중년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다. 경계할 것은 아무런 준비 없는 ‘몽상(夢想)’이 아니라 철저하고 정교한 설계 아래 ‘눈을 크게 뜨고 꾸는 갈망(渴望)’이어야 한다.

셋째, 중년에 찾아오는 ‘건강의 이상신호에 대한 불안’이다.
중년 때는 대부분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된다. 그만큼 몸을 ‘혹사’했다는 것이다. 중년 때는 도서관이나 극장보다는 ‘병원’을 더 찾게 되는 슬픈 시절이다.

중년, 세 가지 계명
그렇다면 어떻게 중년을 살아가야 할까. 품위 있는 중년을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제 1계명 - 꿈은 꾸되 욕망은 사절하라!
사실 인생은 ‘팔 홉’으로 사는 것이다. 즉 전부가 다 채워진 ‘열 홉’에서 ‘두 홉’쯤 모자라 아쉬움 속에 사는 삶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를 채우려고 질주하는 지나친 욕망은 삶을 위태롭게 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은 그의 중년에 신실한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매입하려다가 결국 나봇을 죽게 하고 그 포도원을 탈취한다(열왕기상 21:1~10). 꿈을 이루기 위해 거짓과 살인을 선택했을 때 그 꿈은 야망이며 욕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 악행으로 아합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 중년은 꿈과 욕망의 적절한 ‘균형’을 학습해야 하는 시기이다.

제 2계명 - 이끌되 지배하려 하지 마라!
사실을 말하면, ‘반쯤 흐리고 반쯤 맑은 11월의 아침’ 같은 것이 중년의 삶이다. 따라서 자신은 언제나 잘되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아야 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선민의식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중년은 청년 때와 다르게 명예와 권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발동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예와 권위를 갖기 전에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이끌되 지배하려는 우(愚)를 범치 않게 된다.

제 3계명 - 모자람과 넘침, 그 모두를 경계하라!
말과 감정에 있어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적정량을 유지하는 것은 중년의 품위를 더욱 격상시켜주는 지렛대이다. 곧 절제된 말과 정제된 감정을 구사하는 중년은 우아한 멋을 발한다.

4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위태로운 중년을 살던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40대’를 극복했다. 그리고 이런 권고를 들려주었다.
“그대의 실패한 과거는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고, 그대의 힘겨운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며, 그대의 불안한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들려준 이 문구가 중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랜 벗이 되길 소망한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