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시립교향악단 더블베이스 안동혁 수석

조용한 호스피스병원의 한 병실. 말기암 등 현대의학으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환자와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정리되어가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무게를 존중하는 듯, 위로하는 듯 낮고 묵직한 소리로 음악이 연주된다. 클래식 음악이, 찬양이, 길이 2m, 무게 20Kg에 가까운 현악기 더블베이스를 통해 연주된다. 가슴을 타고 흐르는 음악은 이내 환자의 미간을 풀어지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동안 애써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앞으로 가게 될 길에 대한 확신을 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더블베이스 안동혁 수석(온누리교회 장로·사진)이 샘물호스피스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모습이다. 틈이 날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그는 혼자 가기도 하고, 함께 하길 원하는 이들과 협연하기도 한다. 그 공간에서 활을 켜서 연주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여동생과 친구를 위해 했던 연주
“2살 아래 여동생이 루게릭 병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어요. 뇌 활동은 그대로인데 몸을 못 움직이니까 너무나 고통스러워했지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어느 날 악기를 들고 동생을 방문했어요. 동생은 눈으로만 깜박이며 의사 표현을 하던 상태였는데, 찬송가 연주를 들려주니 감동을 받고 울더군요. 그때 사실 서원기도를 드렸던 것 같아요. ‘주님, 앞으로 아픈 사람을 위해서 연주하겠습니다’라고.”
시간이 흘러 2017년 가을, 친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담낭암으로 투병하던 한 친구가 있었어요. 암이 척추를 눌러 걷지 못하고 꼼짝 못 하는 상태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게 됐는데,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라 문병 갈 때 악기를 들고 가서 친구를 위해 연주해 주었어요. 통증이 심하고 음식을 거의 섭취할 수 없었던 친구는 제 더블베이스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환우들에게도 음악을 들려줬으면 하는 부탁을 했어요. 다른 환우들도 제 음악을 듣고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구요.”
그 일을 계기로 안 수석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연주가 너무 귀하다는 생각에 매달 호스피스병원을 찾아가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두려웠어요. 하지만 연주를 통해 환우와 스태프들과 가까워졌고, 어느 순간 병실이 제 집 같이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앰프와 스피커를 가져가 환우들을 위한 음악 감상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예견된 이별을 했다. 그중 잊히지 않는 한 환우는 연주를 듣다가 신청곡으로 바하 음악을 요청한 지아 씨(가명).
“집에 왔는데 자꾸 생각이 났어요. 자꾸 급한 마음이 들어 월요일에 요청을 받았는데 연주를 준비해서 금요일에 다시 병원에 갔어요. 바이올린과 플루트 연주자까지 함께 연주할 수 있었지요. 너무 좋아하더군요. ‘아플 때 음악 듣는 것이 너무 도움이 된다’면서요. 지아 씨와 남자친구, 가족들과 함께 교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암에 걸린 후 하나님을 원망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선생님이 들려주신 음악이 꼭 하나님이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 같았다’고 말해 주었어요.”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기도하고 돌아올 때면 그 ‘위로의 통로’가 됨을 감사하게 된다고.
“거긴 정말 천국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천국으로 이사 가는 과정을 지켜보지요. 거기에는 환우들 말고도 자원봉사를 통해 그들을 돕는 천사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천사들이 환우들을 떠나보낼 때 힘들어해요. 마음을 쏟아서 돌보던 이들이니까. 그 천사들을 위해서도 제가 가야 해요.”

친구와 함께 꾼 음악의 꿈
“저는 모태신앙이 아니에요. 중학교 때 노래하기를 좋아했는데, 교회를 다니던 친구가 저를 전도했지요. 그저 같이 노래하고 싶어서 교회를 간 거예요.”
예술잡지 <객석>의 초대 발행인인 최원영 씨가 바로 안 수석을 전도한 친구다. 함께 교회에서 중창단 활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교향악을 제대로 처음 듣게 되었다고.
“그전까지는 합창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민회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신세계 교향곡’을 처음 듣고는 ‘이런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러다가 음악 선생님께서 어린이회관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드는데 들어가지 않겠냐고 제의하셨어요. 면접을 가서 원래 응모했던 튜바에서는 떨어지고 더블베이스를 연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아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악기 더블베이스.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큰 악기로 크기가 큰 만큼 묵직한 소리를 내며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가운데 가장 낮은 음역을 맡고 있어 오케스트라의 화음 진행뿐만 아니라 리듬적인 기초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수를 하고 1974년도에 서울대 음악대학을 입학했는데, 재수하면서 무슨 일을 한 지 아세요? 친구인 최원영과 명동에 ‘필하모니 고전음악 감상실’을 만들어 운영해 대학 학비도 미리 벌어놓았습니다(웃음). 친구와 함께 음악을 듣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꿈을 이룬 것이지요.”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안 수석에게는 앞서의 꿈이 다시 한 번 다른 형태로 구현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일본 쿠사츠 국제 뮤직 페스티벌을 다녀오면서 ‘왜 한국에는 이런 페스티벌이 없을까’ 안타까워하며,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음악인들이 모이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해보자’ 하는 꿈을 갖게 된 것.
“음악전문지를 만들면 어떨까 친구에게 제안한 것이 결국 공연예술전문 월간지 <객석>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순수 실내악단 ‘예음클럽’을 동호회 형태로 만들었어요. 대학과 교향악단 등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솔리스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85년 첫 무대를 연 이래 매월 1회 공연을 꾸준히 이어가다 지난 99년 IMF로 인한 예음문화재단 해체로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결국 바랐던 페스티벌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동안 설악산에서 ‘예음 설악 실내악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열 수 있었다. 음악을 중심으로 친구와 함께 꿈꿨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

음악의 힘
“왜 그렇게 열심히 뛰었냐고요?”
개런티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예음클럽 활동을 했던 안 수석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음악감상실부터 음악전문지, 음악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통상적인 오케스트라 멤버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할머니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음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미술과 달리 우리의 지성을 통하지 않고 바로 귀를 통해 뇌의 시상하부에 영향을 주지요. 좋은 소리에 자극을 받은 시상하부는 뇌하수체에 영향을 주어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배출하게 하고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이 완화되는 현상이 바로 이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음악치료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던 음악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설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되길 원했던 마음이 여러 형태로 발전하였고, 결국 죽음을 앞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그 순간까지 연결된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음악 감상만으로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어요. 연주자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으로 마음이 연결되는 그 순간 저희도 위로받습니다.”
앞으로는 아픈 이들뿐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음악회도 하고 싶다는 안 수석. 좋은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해 시골 마을회관에 찾아가서라도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베토벤이 ‘공기의 떨림은 인간의 영혼에게 얘기를 하는 신의 숨결이야. 음악은 신의 언어야. 우리 음악가들은 인간들 중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 우린 신의 목소리를 들어. 신의 입술을 읽고 신의 자식들이 태어나게 하지. 그게 음악가야’라고 말했다지요. 그 일을 평생 하고 싶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배달부처럼 잘 전달하고 싶어요. 그렇게 쓰임 받는다면 그것 이상이 어디에 있을까요. 함께 해요. 기다립니다.”
병원 협주 문의 : ahndo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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