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우리 집 식탁은 어때요?



<가족의 탄생>, 혈연을 뛰어넘는 식탁공동체
21세기, 가장 의미 있는 한국영화 중 한 편인 <가족의 탄생>(2006)은 전통적 가족 구조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제시한다. 인간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 중심으로 돌아감에도, 우린 그 ‘가족’의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힘들어한다. 혈연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가족은 때때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영화 <가족의 탄생>은 바로 그 지점을 꼼꼼하게 훑어내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분식집을 하며 혼자 사는 미라(문소리)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5년 만에 찾아온 형철은 함께 온 20살 연상의 중년 여인 무신(고두심)을 자기 아내라고 소개하면서 집안에 들어앉자, 미라는 어색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무신 전남편의 전처 딸 채연까지 집안에 들이자, 미라는 폭발하고 만다. 그러자 형철은 그런 누나 집에 무신과 채연을 남겨둔 채 가출해버린다.
이 영화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연인 간의 갈등을 다룬 나머지 두 개의 이야기와 함께 피 한 방울 안 섞인 세 여성의 어색한 동거가 어떠한 운명으로 이어지는지 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또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수용될 수도, 혹은 배제될 수도 있는 가족의 다양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때 <가족의 탄생>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게 바로 ‘식탁’이다. 식탁에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가 바로 가족이 되느냐, 못 되느냐로 이어진다. 형철은 미라·무신과 함께 하던 밥상을 박차고 나가 가출해버림으로써 가족 공동체로부터 배제된다. 반면 미라와 무신은 오랜 기간 밥상을 같이하면서 가족으로 묶인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家族)으로부터 벗어나, 식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식구(食口)로서의 공동체 형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함께 경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거다. 채연(정유미)과 경석(봉태규)이 이별하는 장면을 우연찮게 마주한 미라는 그 둘에게 이렇게 말한다.
“헤어지면 밥도 안 먹니? 헤어지고 나서도 세끼 잘 먹고 잘살고 다 그래. 괜찮아. 다 헤어져.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되잖아.”

영화 <그린북>, 유사 가족의 형태로 진화
식탁으로의 초대, 이건 ‘폐쇄와 단절’보다는 ‘공유와 화해’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한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그린 북>(2018) 또한 영화 내내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극심한 1962년, 보수적인 미국 남부로 투어 공연을 떠나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 사이의 실화를 각색했다.
이 영화는 당시에 미국 백인사회가 흑인을 어떻게 차별해왔는지, 또한 그걸 극복하고 그 둘이 어떻게 우정을 쌓게 되었는지를 그려낸다.
‘그린북’은 흑인들이 묵을 수 있는 모텔과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적어놓은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당시 미국 남부의 백인들은 흑인들과 자신들의 일상생활 영역을 구별함으로써 흑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했었다. 백인들은 돈 셜리를 초대해 그의 명연주를 감상하면서도, 흑인인 그를 자기네들과 같은 식탁에 앉히거나 화장실 등 공유를 거부한다. 반면 토니 발레롱가는 돈 셜리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나눠 먹으며 관계를 다진다. 마지막엔 토니 발레롱가 가족의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자리에 돈 셜리가 함께 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유사(類似) 가족의 형태로 진화할 것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족과 공동체성의 해체는, 곧 ‘혼밥’과 ‘혼족’의 증가라는 현실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더더욱 ‘품음과 아우름’으로서의 식탁이 소중해 보인다. ‘최후의 만찬’을 보라. 십자가를 앞에 둔 시간까지 예수님은 식사에 제자들과 함께 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사제지간 이상의 관계로 나아갔다. 단순히 머리로만 진리를 생각하게 한 것이 아니라, 혀로 맛보고 어금니로 생생하게 씹으면서 몸 전체로 진리를 체득케 했음을 기억하자. 함께 하는 식탁, 그건 그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영양분 섭취의 자리가 아니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는 조화와 포용의 공간이요, 기회인 것이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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