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오페라칸타타’의 소프라노 서선영 교수

지난 3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진 <유관순 오페라칸타타>는 1시간 40분 동안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혼연일체를 이뤘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합창단(단장 강기성)이 기획하여 무대에 올린 이 공연은, 아주 오랜만에 한국민을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주인공 유관순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 씨(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의 열연에 관객들은 더 더욱이나 열광했다. 당시 기독교 인구 1.3%의 상황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절반이 기독교인이었고, 이 모든 운동의 장소와 중심이 교회와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공공의 장소에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공연이 웅변하고 있음에, 소름끼칠 정도로 마음의 옷깃이 여미어지는 기분이었다. 3.1운동의 전 과정이 기독교 정신과 기독교인들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대로 기독교 역사이기에, 이 작품의 스토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독교인들의 헌신과 신앙고백으로 이어졌다.
유관순의 죽음 이후, 시신을 마네킹으로 사용하기로 했던 원래의 계획을 바꿔 서선영 자신이 자청하여 관 위에 누워 끝까지 그 역을 감당한 그 마음자리가 무엇이었을까 들어보기로 했다. 이 작품이 3.1절 100주년 기념으로, 단 한 차례만 공연된 것이 무척 아쉽고 아깝다. <편집자 주>

“제가 이 작품에서 유관순 열사의 역을 맡은 것은 큰 은혜이고 축복이었어요. 무엇보다 서울시립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공연하게 한국말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하디 진한 신앙고백적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역사니까요. 그 자체가 제게는 메시지였습니다.”
유관순 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서선영 씨(사진 가운데)의 고백이다.

“그의 애국과 신앙 안에 들어가서”
유럽무대에선 원어로 오라토리오로 기독교적 표현을 하곤 했지만, 이번엔 순전히 우리말로 직접 기독교신앙을 표현하는 참으로 특별한 기회였단다. ‘유관순 역’은 성악가에게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고난도의 배역이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보다 민중을 이끄는 소리를 질러야 했고, 메이크업 없는 민낯으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표현을 생소리로 내야 하는…. 그래서 ‘예쁘게’, ‘아름답게’, ‘기교 있게’ 라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온몸을 울려서 소리를 내야 하는 성악의 기본자세까지도 내려놓아야 했고, 어쩌면 성악가의 생명인 성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마지막 생각까지도 해야 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초연작이어서 성악가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조건과 상황도 좋지 않아서 중도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그런데 작품을 받고 관계된 역사와 유관순 자료를 찾아 몰입해서 공부하면서, 우리 역사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에 심취해, 모든 악조건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명으로 유관순 역을 감당하면서, 서 교수가 받은 감사와 감격이 너무도 크다고 고백했다. 유관순의 애국심과 신앙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체험을 한 것이다.

“제게 유관순 역 주심은 큰 영광”
그날 오페라칸타타를 감상하던 관중들은 유관순 역을 맡은 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았다.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의 표현이 그저 성악가이거나 배우이거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관순 역을 맡으면서 일제강점기와 서대문형무소, 그리고 유관순의 삶에 대해 공부하다가, 유관순이 당한 고문의 내용 기록을 보면서 많이 아팠고 울었고 분노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고문방법과 내용에 저는 자지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한 쪽 귀가 잘리고, 또 다른 귀까지 잘리고…
콜타르를 머리에 부어 머리카락과 두피를 다 뜯어내고…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 소녀의 유두를 잘라내고…
발바닥을 벗겨내고 손톱발톱을 빼내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이상의 고문 내용은 지면에 표현할 수도 없다.

유관순이 당한 고문 공부하며 결심
이런 내용을 역사적인 고증 자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서선영은, 유관순 역을 맡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영광이구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연습 때마다 벅찬 감격과 눈물이 없는 날이 없었고, 리허설 날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성악가의 노래는 저절로 울부짖음이 되었고, 성대를 아끼지 않는 함성으로 나오게 되었다.
서선영은 유관순이 당한 고문 이야기를 우리 여성들이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렇게 찾은 대한민국, 우리의 나라와 민족애를 우리 여성들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이제라도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유관순의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민족사랑을 깊이 마음에 담고 결연한 심정으로 공연에 임했다. 유관순의 기도와 독백과 울부짖음을 관중에게 그리도 처절하고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내 나라와 내 겨레가
비록 힘이 없고 가난하지만
자유를 누릴 권리조차 빼앗겨버린다면
견딜 수 없다.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견딜 수 없다.
내 귀와 내 손이
다 잘리고 부러진다 하여도
육은 견딜 수 있다
고통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짓밟힌
이 현실만큼은 인정할 수 없다
내 한 몸 바쳐 독립이 된다면
믿음대로 행할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행할 것이다
믿음대로 할 것이다.”


1920년, 서대문형무소 8호감방 식구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끌려가, 일본 형사 앞에서 유관순이 한 고백이다. 이 내용을 그의 성악적 목소리를 넘어 온 몸으로 온 영혼으로 표현하면서….

마네킹 두고도 시신 역할 자청
“연습 때보다 본 공연 때 더욱 감회가 컸어요. 고문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위와 같은 기도와 고백을 멈추지 않는 그 자세을 이입하며 모진 고문으로 죽음을 맞은 유관순의 시신까지 제 몸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마네킹을 시신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성악가가 직접 시신 역할까지 하는 것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관 위에 흰 천으로 덮여 시신처럼 누워서, 죽음 이후의 상황들을 그대로 들으면서, 하늘나라에서 내려다 볼 유관순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딛고 선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속의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성악가 서선영의 음악 너머에 있는 철학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의 재산이지 싶다.

“보이지 않지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 고백
문화의 불모지 창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교회 어린이성가대에서 하고 싶은 노래공부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보이지 않지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늘 느끼며 고백하며 살았단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독일 뒤셀도르프슈만국립음악대학 대학원(Robert Schumann Musikhochschule Konzertexamen)에서 독일 DAAD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우승(2011년), 바르셀로나 프란시스코 비냐스 국제 콩쿠르 우승(2010년)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우승(2011년)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최고의 소프라노 선정(2011년) 제3회 예술의 전당 예술대상 신인상(2017년)을 수상한 재원이다.
그밖에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오페라 주역을 맡아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활약하고 있고, 이번 5월에는 프랑스 무대에서 나비부인으로 데뷔하게 된다.

“5월에 프랑스에서 데뷔해요”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이끌려갈 겁니다. 제 목소리를 주신 분이 사용하시는 대로요. 대학에 다닐 때부터 그분은 저를 재능으로 높이셨지요.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게 하셨고, 이제 국제무대에서 여러 역할을 맡게 하십니다.”
그는 남다른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모든 학문이나 예술이나, 어떤 경지에 있는 분들은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거부하고 싶은 일을 만날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시옵소서’ 기도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일을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분의 뜻을 뒤늦게 알게 되곤 하니까요.”
이 마음으로 무대에도 서고, 강단에도 서서 사역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유관순 오페라칸타타를 계기로, 어딘가 다른 향기가 더 진동하지 않을까, 그와의 인터뷰 시간을 통해 느낌이 전해져 온다.

하나님 몫, 내 몫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인 목소리를 가다듬고 기량을 키우는 것은 제 몫이지만, 항상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제게 주신 재능의 원천이 하나님임이시기에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거든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며 후진양성에 매진하는 성악가 서선영 교수를 통해 그분이 앞으로도 거두실 열매를 기대한다.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1919년에 머물지 않고, 1945년에 머물지 않고, 우리 각자의 가슴에서 함성이 되어 성숙을 이루어가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섰다.

박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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