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4세기, 세속을 닮아가는 예루살렘과 로마기독교에 절망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좀 더 깊고 맑은 영성을 위해 찾아간 곳은 이집트 사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사막의 교부’라고 불렀습니다.
요단강의 시원한 물이 아닌 사막의 거친 모래 바람으로 세속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씻어 내던 사막교부들은 항상 ‘멜로테(melote)’라는 회색 망토를 입고 다녔습니다. 사막교부들이 무거운 ‘멜로테’를 더운 사막에서도 늘 몸에 두르고 다닌 이유는 자신들도 죽은 양처럼 아집과 탐욕으로부터 죽은 삶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먼저 사막교부들은 ‘가난’이라는 영성을 추구했습니다. 사막교부 안토니우스는 “하나님이 없는 부(富)에 만족하고 사는 예루살렘과 로마의 종교 권력자들에게서 지옥의 냄새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황금과 권력으로 축조한 자신들만의 천국을 즐기는 그들에게 절망한 안토니우스는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선택한 ‘거룩한 가난이 진정한 부요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플루토(Pluto)’라는 악마가 나옵니다. 라틴어 ‘플루토’는 ‘모든 것에 부요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는 ‘부요’와 ‘넘침’이라는 그 번영이 때로 하나님을 망각하게 하는 악마의 선물일 수 있다는 단테의 통찰입니다. 사막교부당시 ‘플루토’가 제공한 황금의 눈부심에 시력을 잃어버린 당시 종교권력자들의 동공 속에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삭제되고 없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돈을 따라가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조차 번영의 신학이 환호와 갈채를 받습니다. 토지조차 투기(投機)의 대상으로 변질된 현실을 본 작가 김소연이 <한 글자 사전>에서 ‘땅’에 대한 정의를 “생명이 싹트는 곳에서 돈이 싹트는 곳으로 바꿔진 곳”이라 해석할 만큼 이 시대는 분명 ‘플루토의 시대’입니다. 문득 성 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삶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선택한 삶은 자랑스럽다”라는 말이 기억에 스칩니다.

또한 사막교부들은 ‘고난’이라는 영성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특히 사막교부 에바그리우스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 역설했는데, 이는 영혼의 두 대적인 ‘영적이완’과 ‘영적 오만’을 동시에 세척해줄 도구로 고난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고난을 만나면 두려워하고 절망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난을 기피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흔들리며 힘겨워하는 자신을 보며 평안할 때 몰랐던 자신의 약함을 스스로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겸손’과 ‘낮아짐’이라는 영성을 학습하게 하는 귀한 선물입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자신을 절망시킨 그 고난을 넉넉히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난은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유익한 훈련입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