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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삶을 보여준 ‘천로역정’
특집-사순절에 다시 보는 古典
[231호] 2019년 04월 01일 (월) 전영혜 @
   
*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책, 하나님 나라를 향해 길 떠난 나그네를 위한 이정표, 밀턴의 실낙원과 함께 17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작.
국내에는 선교사 게일이 번역한 이래 길선주 목사가 감명 받아 평양 대부흥의 원동력이 된 책, 이성봉 목사가 ‘천로역정 부흥회’를 통해 이 세상을 장망성(장차 망할 성)으로 지칭함.
특히 19세기 말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들어와 고통과 유혹을 이겨내고 구원으로 들어가게 힘을 주었고 일제의 탄압 하에도 버티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삶의 굽이마다 엄습하는 염려와 두려움, 무거운 짐을 느낄 때면 ‘나에게만 삶이 이런가?’ 묻게 된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사순절을 지내며 이러한 삶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답을 주는 ‘천로역정’에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한다. 천성을 향해 가는 여정을 4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와 닿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저자인 존 번연(John Bunyan) 자신이 그런 순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스펄전 대학 피터 교수는 말한다.

땜장이 도구를 짐 지고 걷다
존 번연의 고향 영국 베드포드의 엘스토우 마을은 케임브리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1600년대 이곳을 짐작해 보면 땜장이였던 아버지 밑에서 온갖 무거운 도구를 짐 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던 존 번연의 모습이 바로 천로역정 주인공의 등장 모습과 맞물린다. 가계를 이어가려 일거리를 찾아 어디라도 가야 했을 그는 비바람과 뙤약볕 속에서 각종 쇠붙이 짐을 지고 하루에 몇 시간씩 걸으며 눌림과 힘겨움을 견뎌야 했다. 그가 살아간 반경엔 구릉과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예배당 문 앞의 불화살
순례자가 짐 지고 첫 목적지로 삼아야 했던 빛나는 문. 그 문은 마을 교회당의 옆문으로 바깥세상과 공동묘지로 통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힘들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바알세불의 화살이 마구 당겨지던 곳으로, 존 번연이 어릴 적 다니던 교회인데 예배는 대충 참석하고 이 문으로 친구들과 놀러 나가던 때를 기억한 것이라 했다. 바알세불은 그 문을 드나드는 사람을 향해 건너편 건물 꼭대기에서 화살을 마구 쏜다고 연상하며 풍향계의 화살촉에서 그런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말한 ‘교회 마당만 밟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이었나 보다.
이어 가파른 언덕을 짐을 진 채 구부정하게 올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순간 짐이 풀어져 없어진다. 그간 무겁게 진 짐이 땜장이의 도구뿐 아니라 무지와 가난, 첫 아내의 죽음과 눈먼 딸아이로 인한 죄책감 등이었기에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은 이후의 삶의 여정을 가볍게 했으리라. 거기에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은 크리스천의 삶은 성큼 다음 단계로 나가는 모습이다.

시험과 함께 위로도 얻으며
십자가 언덕을 넘은 크리스천의 걸음이 천성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자 그것을 본 ‘위선’과 ‘형식주의자’가 다가와 지름길이 있다며 안내해 준다. 그러나 제자리를 돌고 나서야 겨우 옳은 길을 다시 찾고 크리스천은 사자의 두려움을 무릅쓰며 다음 목적지 궁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궁전은 이 마을에서 높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집을 멋진 상상으로 가져온 것이라 했다. 여기서 ‘분별’의 천사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실컷 하는 장면은 우리네 인생에 간간이 주시는 시원하고 달콤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시 여행을 나설 때는 마을의 이웃이었던 ‘믿음’을 만나 동행하게 되어 순례의 길은 한결 나아진다. 함께 겸손의 계곡을 지나며 괴물을 만나 사력을 다해 싸우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니 갑옷은 움푹 파이고 찌그러졌다. 그때 ‘꽤 잘하고 있다’ 우쭐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들고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은 우리 모습과 어찌 그리 같은지.

현시대를 꼭 닮은 허영의 시장
시장은 불평과 훼방, 흥정과 욕하는 소리, 호객 행위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들은 화려한 것들을 팔고 있으나 실상은 쓰레기고, 곡예사와 광대는 소매치기였다. ‘무엇을 살 것이오?’라는 말에 ‘진리’라고 대답하자 크리스천과 믿음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게 되고 철창에 갇히게 된다. 그 증인으로 나온 질투, 미신, 배은망덕, 방탕, 악의…. 이들로 인해 믿음은 순교하게 되고. 그때 문지기 ‘소망’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크리스천은 탈출은 고사하고 순례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존 번연은 회심 후 감동으로 말씀을 선포하다 영국 국교회 법에서 제시한 자격 미달로 수감된다. 3개월,
그러나 형량은 늘고 늘어 12년을 감옥에서 살게 됐다. 종교개혁 후 혼란해진 가톨릭과 성공회의 개신교 탄압으로 옥중에 갇혀 존 번연이 느꼈던 감정들이 이런 종류가 아니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성도의 길
믿음 대신 소망이 동행한 길에서는 ‘이기심’의 신사를 떠나보내고 ‘재물’ 노인을 물리치고 쉼을 가지며 원기를 회복했다. ‘천성 길 가는 법을 좀 알 것 같다’고 말하며. 그때 ‘헛된 자만’이 나타나 이젠 안심하라며 풀밭으로 인도하는데, 따라간 그 길은 밤이 되자 독 넝쿨이 자라 모두 말라죽은 나무로 휩싸이게 되었다.
게다가 비와 천둥이 휘몰아칠 때는 ‘자책’이 나타나고 ‘절망’이 다가와 의심의 성으로 끌어갔다.
거기서 지하 감옥에 갇혀 매일 계속되는 매질과 죽은 이들의 뼈를 보며 차라리 죽으라고 저주하는 ‘망설임’의 소리를 피할 길이 없는 크리스천. 그러나 소망의 ‘임마누엘을 신뢰하라’는 격려에 두루마리를 펴자 놀랍게도 밀랍 봉인에서 열쇠가 나오며 감옥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 존 번연은 12년의 감옥생활 후 출소하여 베드포드 교회에서 설교하며 자신의 사명을 불태우나 3년 뒤 재수감된다. 누구보다도 어두운 감옥 속 고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절절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베드포드 시내의 거리 한 보도 블록에는 ‘존 번연이 수감 되었던 자리’라는 표식이 있다(사진ˑ도시 계획으로 감옥에 길이 난 것).

천성이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여기는 임마누엘의 땅으로 천성 풍경의 일부입니다.” 목동들은 이렇게 말하며 평화롭게 양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이는 자를 끝까지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곧은길로 보이는 두 길 앞에 나타난 흰 두건으로 가린 자. 어떤 존재일까. 그는 선한 사람인 듯 보이다 천성에서 점점 멀어지는 길로 인도하더니 두건을 벗어 얼굴 없는 것을 드러내고 그물에 갇히게 했다. 빛나는 존재의 도움으로 제자리를 찾아 감사의 찬양을 하는데 노인이 나타나 천국은 없다고 했다. ‘40년 동안 여행했어도 발견하지 못했다오. 이제 어리석음을 깨달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평생 한길을 보고 오다가도 마지막에 이런 말에 걸릴 수 있을까. 존 번연은 그럴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천성문으로 향하는 길이 없어지고 소용돌이치는 사망의 강이 나타났다. 믿음에 따라 물의 깊이가 달리 느껴진다는 이 강은 오로지 주님과 함께 건널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안개로 천성 문은 보이지 않고 어둠과 공포가 몰려오는데 ‘소망’은 말했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을 기억하라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선포하니 미끄러운 강바닥은 단단해지고 드디어 안개가 걷히며 강둑에 도착했다. 환영하는 천사들 속으로.
그 다음은 영원한 행복의 곳-상상하시라.
천성 가는 길이 쉽지 않으나 주님이 먼저 가셔서 잘 아는 길, 우리도 잘 따라오라고 믿음과 소망을 동행자로 붙여주시고 시시때때로 분별과 같은 천사도 만나게 하시니 갈만하리라.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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