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이들이 자라 올해로 아들은 스물 셋, 딸은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키웠는지 지난시간을 생각해보면 가물가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써준 ‘엄마의 편지’를 열어보면 지나간 어제의 시간들이 모두 살아서 오늘이 됩니다.
‘엄마의 편지’는 첫 아이 이삭이가 걸음마를 배우며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부터 썼던 것 같습니다. 작은 수첩을 마련해 매일 한두 줄이라도 꼭 편지를 썼는데, 기저귀를 갈아줄 때면 “엄마 마음속 찌꺼기도 너처럼 밖으로 버리고 싶다”고 적었고, 봄이면 파릇파릇 움트는 새순 이야기도 적고, 여름이면 냉수 같은 시원한 사람이 되자고, 가을이면 높은 하늘처럼 꿈을 크게 갖자고, 겨울이면 군고구마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자고 편지를 썼습니다. 발음이 서툰 아이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기도 했는데, 그렇게 사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작은 수첩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아이가 한글을 깨치고 떠듬떠듬 책을 읽던 날,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엄마의 편지를 아이가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겉면에 <엄마의 편지>라고 쓴 작은 수첩을 가방에 넣어 매일 한 장씩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수첩을 열어 왼쪽 페이지엔 성경말씀을 한절 적고 오른쪽에는 엄마가 전하는 소소한 일상이나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잠언 22장 6절 말씀을 날마다 엄마의 편지 안에 자연스레 담아냈다고나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의 편지를 꺼내 읽었고, 그것은 엄마 품에서 빠져나간 아이들과 소통하는 연결고리와도 같았습니다. 인생의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면 후회스런 일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쓴 엄마의 편지는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을 만큼 참 잘한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따금씩 엄마의 편지 뒷면에 아빠도 편지를 적어줄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저희 가족에겐 서로를 향한 편지가 가장 귀한 자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연애시절, 제가 보낸 편지를 한통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파일에 끼워 보관한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된 후 저도 남편이 가끔씩 주는 쪽지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라 엄마의 편지가 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손으로 쓴 편지가 더 소중한 추억과 자산으로 오래토록 자녀들에게 남겨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때때로 삶에 지친 어느 날, 그간의 편지를 한 번씩 꺼내 읽으면 피로회복제 먹은 것보다 더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편지를 쓰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 하나만은 놓치지 않는 엄마이고 싶습니다.

지소영
제7회 아름다운동행 감사이야기 공모전 으뜸상 수상자로 오랜 시간 감사일기를 써왔다. 목회자의 아내로, 글쓰기 교사로 살아가며 두 자녀를 키울 때 놓지 않았던 것은 바로 감사. 감사하며 자녀를 양육했던 여러 가지 노하우를 이 코너를 통해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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