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는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마주한 두 가지 장면을 통해 겨울에 나무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연히 거닐게 된 스위스 수도 베른(Bern)에서 마주한 장면이었습니다. 두 사내가 국회 건물 뒤뜰에 있는 나무줄기를 무언가로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를 감싸는 재료는 속이 빈 대나무 종류를 엮은 매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눈도 녹았고 햇살도 따스해서 한파는 이미 지난듯한데 왜 나무를 감싸주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이 나무들을 왜 감싸주고 계시나요?”
“햇살 때문이에요.”
작업에 열중하던 사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이 무렵이 되면 낮 동안 따스한 햇살에 오래 노출되어있던 나무줄기가 상처를 입거든요.”
한 나무에서도 나무줄기가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는 부분의 온도가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높아지게 마련인데, 특히 겨울에는 낮 동안 햇빛에 노출된 나무줄기의 세포 조직이 녹았다가, 해가 진 후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지면 다시 조직이 얼면서 ‘형성층’이 괴사하는 피해를 입습니다. ‘형성층’은 나무줄기의 직경방향으로 세포를 만들어 나이테를 생성하는 조직으로 여기에 피해를 입는 것은 부위가 부분적일지라도 전체 나무의 생장과 생존에 치명적입니다. 바로 그런 피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인터라켄에서 그린델발트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본 창밖 풍경 속에서 만났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산 중턱 외딴 집 바로 옆에 키가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독일가문비나무(Picea abies)에 전구가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어 마치 동화속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자연스레 여행 오기 전 서울 도심속 상가를 중심으로 장식 전구들로 촘촘히 감겨있던 가로수가 떠올랐습니다.
전구의 종류에 따라 빛의 세기와 나무에 전해지는 열의 양은 달라지겠습니다만, 전구를 너무 오랜 기간 나무에 밀착시키는 것은 나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스위스나 우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보고에 따르면 특히 전나무, 주목과 같은 상록침엽수의 경우, 일 최저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3월 초순부터는 전구가 직접 닿는 잎에서 열로 인해 잎마름, 황변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무를 감싸고 있는 장식용 전구를 제때 철거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이렇게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는 계절이 오기 전에 나무들이 제 생명을 살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나무속에서 딱딱하고 거친 땅과 줄기를 뚫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을 여린 새순들이 제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우리도 조심조심 살펴줄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박고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임업연구사로서 우리나라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 높은 산의 침엽수가 후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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