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박관태 의료선교사 이야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일반외과/산부인과 박관태·정수경 선교사 부부. 2001년부터 몽골 연세친선병원에서 일하다 한국에 들어와 서울아산병원, 고대 안암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다 다시 2013년 잘 나가던 시기에 부르심에 순종하여 다시 몽골로 들어갔다. 몽골 국립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현재는 몽골 최초의 기독병원인 아가페 기독병원 원장으로 만성신부전 환자들을 치료하는 중 100여 명의 몽골 환자들을 한국에 연결하여 신장이식을 받도록 지원하였다. 한편 오지에도 들어가 이동진료사역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몽골은 한반도의 9배 정도 되는 광활한 국토에 인구는 30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인구의 반이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몰려 산다. 즉, 넓은 나머지 땅덩이에 인구 150만 명이 흩어져 사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과 수도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 끝없는 초원과 유목이 펼쳐지는 30년 전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 의료선교의 측면에서 보면 이동진료나 지방사역의 필요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울란바토르에서는 국립의대 교수로 제자들을 양성하고, 아가페 기독병원 사역을 하면서 혈액투석 환자와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병원의 사역으로 바쁜 나날이지만, 지방진료는 몽골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차튼족은 몽골에서 얼마 남지 않은 소수 부족이다. 홉스골 아이막이라는 곳에 모여 살고, 이제는 전체 400명밖에 남지 않은 작은 종족인데, 순록을 키우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순록에 맞춰 이동하는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1,200킬로미터의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도착해서는 다시 말을 타고 10시간 동안 산을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5, 6개의 높은 산을 넘어가면 산 정상에 순록을 키우며 사는 ‘차튼족’을 만나게 된다.
박 선교사는 2002년에 처음 이 종족을 알게 된 후 매년 가게 되었다. 편도 50시간의 이동시간 중 단연 압권은 말을 타고 가는 여정으로, 너무나 힘들어 2년 전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작별인사도 했었다고.
“그런데 놀라운 반전은 몇 달 지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꾸 거기의 풍광들과 사람들이 아른거렸습니다. 비포장도로의 고통과 허리가 끊어질 듯한 아픔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 영혼들이 자꾸 아른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박 선교사는 여름에 다시 가기는 엄두가 안 나던 차에 겨울에도 갈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작년 설 연휴를 이용해 이동진료를 가게 되었다. 다만, 겨울에는 홉스골 호수 위 길을 가로질러가야 하는 것이 여름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겨울에는 호수 위로 차가 다니는데, 3시간 정도 2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팀 모두가 얼음호수 위를 차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얼음이 깨지고 빠진다면 살아날 확률은 없는 위험한 길이지요. 창문이라도 열면 얼음이 갈라지는 듯 뻐적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어요. 그렇게 잔뜩 긴장해서 도착했는데, 낮에도 영하 25도, 밤에는 영하 35도로 떨어지더군요. 모든 식수가 얼어 물을 먹기 힘든 상황이기에 씻을 수도 없고, 눈 녹인 물로 겨우 양치만 했습니다. 4~5일을 진료하고 산 밑에 내려오면 그래서 ‘다신 못 오겠다’고 생각하던 기억이 납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그곳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체 이 사람들이 왜 그럴까? 난 또 왜 그럴까? 전 그 답을 ‘주님이 주신 망각’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도바울도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아시아와 유럽을 쉬지 않고 다녔다. 잠시의 고통은 잊어버리게 되고 주께서 영원한 영광만이 기억되도록 하셨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이 선교사의 삶일 것이다.

심재두
내과 전문의이자 선교사로 알바니아에서 교회 개척과 의료 사역을 하였으며, 현재 한인 의료 선교사 네트워킹사역을 하며 의료 선교 관심자와 헌신자들을 모으는 7000네트워크운동(www.7000m.org)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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