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은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아무 때나 쏟아져 날 힘들게 했지요. 예전엔 이 서랍들을 뒤지고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일, 부끄러웠던 기억, 염려와 두려움에 움츠린 시간, 서운했던 일은 다 잊어버린 것 같다가도 어느 구석에 숨었다 나오는지, 왜 그리 선명하게 떠오르는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런 기억들을 떨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게 된 것 같아요. 힘들고 아픈 그 기억 속에 예수님이 보이면서부터 말이지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살고 힘 있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죄와 허물로 인해 부끄러움 당할 수밖에 없는 날 예수님이 그의 옷으로 덮어 주셨고, 가난한 시간 속에서 그의 공급하시는 손길을 경험했지요.
생각해보면 내가 굳게 붙들고 살던 것이 깨지고 무너지는 아픔도 있었으나 그건 내 성벽을 허물어 나와 함께 거할 자리를 만드시느라 일하신 과정이었다는 걸, 지나고서 알게 되었어요. 비록 넘어져도 예수님이 다시 일으키시고 가난한 중에도 기쁨과 만족을 경험하고 나니 이후로도 그가 동행하시고, 도우시고, 채우시리란 믿음이 있어요.
고난의 기억은 날 두렵게 하나 그 안에 나타내신 예수님 은혜는 세상을 당당하고 능력 있게 살게 하는 힘이 되기에 그 또한 소중히 여겨지고, 기쁨의 추억도 고난의 기억도 모두 감사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하기에 내 인생엔 버릴 것이 없어졌어요. 기억의 힘은 갈수록 약해져도 예수님 흔적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유효기간은 짧아도 그의 은혜는 영원하지요.
예수 믿으세요. 삶의 모든 기억을 사랑할 수 있어요. .
수필가이자 온곡초등학교 교사.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속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서로는 <자녀는 엄마의 축복으로 자란다>가 있다. 서울광염교회 집사.
이종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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