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정리의 힘

새로운 전자제품을 구입하면 집으로 배달되어오는 건 그 제품만이 아니다. 튼튼한 박스, 플라스틱 재질의 완충제,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잠깐 고민하게 만드는 두툼한 사용설명서까지. 하다못해 얇디얇은 신용카드 하나를 받을 때도 우리는 그 카드의 몇 배쯤 되는 두께의 약관과 카드설명서를 함께 받는다. 때로 제품 외에 일회용성 쓰레기가 더 큰 부피로 배달되는 건 작은 카드부터 커다란 청소기까지 매한가지. 종이박스나 완충제는 비교적 처리가 쉬운 반면 사용설명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터.
사용설명서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자니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고, 그렇게 쌓아놓은 사용설명서는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다. 이런 고민을 했던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저자이자 미니멀리스트 밀리카는 신혼집에 들여온 가전제품의 회사별로 고객센터에 “사용설명서를 종이가 아닌 디지털로 받을 수 있느냐”와 “보증서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 이 두 가지를 문의했다고 한다. 문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도어락과 인터폰 사용설명서는 홈페이지에 제품별로 상세히 안내가 되어 있기에 파일로 다운로드 할 수 있고 서류로 된 설명서는 버려도 무방하다 안내를 받았습니다. 아울러 보증서는 구매 영수증이나 결제이력으로 대체 가능하다 합니다. 전기레인지의 경우에는 매뉴얼을 메일로 받았고 제품 설치 이력은 개인 정보로 관리가 된다고 합니다.”
비록 한 번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밀리카는 서랍 하나를 채우던 문서를 대여섯 장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건네는 단상 하나.
“그동안 비워도 괜찮은데 막연한 불안감으로 그냥 지니고 있었던 물건이 참 많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가지고 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일단은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어정쩡하게 소유하는 것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왜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소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은 이가 얻어낸 공간은 그 자신에게 더욱 소중한 법. 우리도 서랍 혹은 선반 한 칸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사용설명서와 보증서를 한 번 탈탈 털어보자.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던 종이더미가 온라인상에 아무 부피 없이 이미 디지털화 되어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이미 다 사용해버려 처분한 전자제품의 설명서를 여태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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