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배경이 된 의사 - 故배기영을 기리며>

1985년, 신촌 로터리에서 부근에 ‘동교신경정신과의원’을 개원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30년 동안을 진짜 의사로 살다가 2015년 6월 4일 세상을 떠난 ‘배기영의 삶’을 정리한 책이다.
어쩌면 평범하고 소박하게 보일지 모르는 의사 배기영 선생(사진 아래)의 삶을 통해, ‘의사답다는 것’의 해답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았는데,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 어디에서 공식적인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찾아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에게 의술은 삶의 도구가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는 소명이었다.
저자 최규진 님과 배기영 선생의 지인들은 그가 살아온 흔적들을 찾아서 퍼즐 맞추기 하듯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 책의 완성도는 아무도 모른다. 자기가 가진 퍼즐조각을 채운 만큼 밖에.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일을 다 기록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맘껏 봉사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개업의사로, 개업한 그 장소에서 한 번도 옮기지 않고 지키며 세상살이에 지쳐 찾아오는 영혼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돌보며, 정신장애인 뿐 아니라, 노숙자, 고문 피해자, 수배 중인 학생 운동가, 정신적 피해를 입은 노동자 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소리 없이 돌보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관계자에 의하면, 사회적 재활을 강조한 정신보건법 제정, 고문 피해자의 첫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승리, 직장 내 ‘왕따’로 인한 노동자의 피해 최초 인정, 정신 질환의 산업재해 최초 인정 등 적지 않은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누가복음 10장에 기록된,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아준 선한 사마리아인과 의사 배기영 선생은 같은 부류의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하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돌보아준 의사 △한없는 무료진료로, 세상 떠난 후 병원에 제약회사에 갚을 약값 청구서가 엄청났던 의사 △시작한 봉사는 도중하차가 없던 의사 △일주일에 두 번은 노숙인들 진료를 틀림없이 하던 의사 △유난히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컸던 의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배경이 되어준 의사 △상대방의 입장을 늘 배려하던 의사 △생각과 사상의 다름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대했던 의사 △아무리 피곤하고 바빠도 만면에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고 대하던 푸근하고 자상한 의사.
끝없이 이어지는 배기영에 붙는 설명들은 이 책에 실려 있는 지인들의 증언들이다.
<세상의 배경이 된 의사>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보며, 좀 낯설게 느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어쩜 의사 배기영을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빛깔을 잘 낼 수 있도록, 그 배경이 되어주는 따뜻하고 그윽한 존재. 이 이야기가 고단한 세상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TV드라마 <Sky 캐슬>의 주인공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하늘나라에서도 땅을 내려다보며 여전히 정신과의사 노릇을 제대로 해내는 ‘의사 배기영’을 모두가 만났으면 좋겠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 값 1만5천원)

박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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