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톡 건드리면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한 아이가 앉아있어요. 아침부터 집에서 맘이 상해 와 울고는 싶은데 뜬금없이 우는 이유를 해명할 길이 없어서인지 한동안을 참더니만 이내 누군가와 살짝 부딪히곤 터져 버리네요. 어린아이도 사람들 앞에선 감추고 싶은 슬픔이 있고 차라리 속 시원히 울 수 있도록 건드려줄 핑계가 필요한데, 어른은 오죽할까 싶기도 해요. 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맘 편히 숨어 울 곳이 없어 참고 살 때가 있지요. 진짜 아픔을 감추고 싶어 차라리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그 돌멩이를 핑계 삼아 울고 싶을 때가 말이지요.
우는 이를 보면 사람들은 종종 그 이유를 찾느라 바빠요. 그리곤 뭔가 허물을 찾아내면 훈계를 하기도 하지요. 아픈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그 시선이 더 힘들 때가 있어요. 남의 아픔이 내 것으로 다가오기란 사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겪어본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아파본 이는 그 아픔을 알고, 잃어본 사람은 그 상실감을 알기에, 비록 아픔이었으나 나중엔 그것이 남을 위로하는 치료약이 되는 걸 경험하기도 하지요.
울고 싶을 땐 예수님 앞에서 우세요. 그는 슬픔에 잠긴 우리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왜 그렇게 주저앉아 있느냐고 슬픔 가운데서 올라오라고 손짓하거나 탓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셔 배고픔과 피곤함, 눈물과 슬픔, 가난함과 육체의 아픔을 다 겪으셨기에 우리의 아픔을 다 아시지요. 오히려 우리보다 더한 아픔으로 눈물 흘리시는 그는, 죽음으로 우리 생명을 사신 하나님 아버지세요.
힘들어 지칠 때, 깊은 슬픔으로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예수님 이름을 부르세요. 그가 안아주시고, 먹이시고, 함께 울어 주실 거예요.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인데 옆에 있는 이의 슬픔이 느껴지고, 그 눈물을 보며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땐, 내 안에서 함께 우시는 예수님을 경험해요. 예수님의 마음을 알면 다 경험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아픔이 느껴지지요.
예수 믿으세요. 그가 위로하시고 평강을 주실 거예요.

수필가이자 온곡초등학교 교사.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속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서로는 <자녀는 엄마의 축복으로 자란다>가 있다. 서울광염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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