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말을 건네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다윗이다. 시편 절반이 다윗 작품이다. 온 하늘과 온 땅이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다윗 작품에는 영성이 깃들고 예술성이 있다. 문학적이고 덕(德)스럽고…. 영성의 언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던 성군(聖君)이다.

말에 대한 과잉반응
그런데 온유의 대명사 다윗이 종종 욱~ 하는 성질이 나온다. 갈멜의 목축업자 나발에게 보인 태도가 그렇다. 나발이 부자가 된 것은 다윗 군대의 덕(德)이 컸다. 그런데 양털을 깎는 잔칫날, 군사를 보내 도움을 청하니 나발이 대뜸 “웃기는 소리 말라! 다윗이 어떤 놈이냐?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는데 그런 놈이냐”(사무엘상 25:10) 빈정댄다.
이에 다윗은 분노한다. 4백 명 군대를 이끌고 직접 출동했는데, 온 가족을 몰살시켜버릴 태세였다. 과잉반응이다. 파리 한 마리를 잡는데 대포를 동원하는 격이다.
아내 미갈의 경우도 그렇다, 법궤가 들어올 때 왕은 기분이 좋아 춤을 춘다. 그 모양을 보고 미갈이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핀잔을 준다(사무엘하 6:20). 다윗은 계집종이라는 말로 받아치며 처갓집을 욕하고 평생 잠자리를 거절하는 격한 반응을 보인다. 다윗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왜 하찮은 일에 군대를 동원하고 아내에게 세게 퍼부었을까.

말로 인해 받은 상처
다윗이 살아오면서 말로 인한 상처를 짚어보면 이해가 된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가족을 포함하여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조롱, 무시의 말을 들었다.
왕을 뽑으려고 사무엘이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막내 다윗은 후보에 넣지 않았다. 음악성, 문학성이 뛰어난 다윗의 성향이 너무 여려 왕이 될 수 없다 판단했기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는 남아 있어! 그 자리는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사무엘상 16:11)
형들이 출전한 전쟁터를 찾았다가 철부지라 무시당한다(사무엘상 17:28).
골리앗은 블레셋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조롱, 저주했다(사무엘상 17:43).
주군(主君)이자 장인. 사울은 다윗을 자기 마음대로 대했다.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사무엘상 20:27)
이새의 아들, 촌놈이라는 말이다. 그건 아버지까지 포함한 조롱이다.
다윗이 예루살렘성을 공격하려 하자 여부스 부족은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사무엘하 5:6) 조롱한다.
사울 정권의 신하였던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반역 당하고 도망갈 때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사무엘하 16:7, 8) 저주를 퍼붓는다.
이처럼 다윗은 유년시절부터 언어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트라우마, 정신적 외상(外傷)이 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것은 잘 참아도 이상하게도 말로 인한 상처는 참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알렉산더 테로는 “복수하는 사람의 유일한 바람은 평준화이다. 나는 너에게 받은 만큼 주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강한 자들에게 받은 말의 상처를 나보다 약자들에게, 만만한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내가 받았던 언어의 상처를 애꿎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가 쉽다.

그가 변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므이가 독한 말로 저주했을 때 그는 잠잠히 듣기만 한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나발이나 미갈에게 보여주었던 격한 태도와는 너무 다르다. 다윗 속에 말로 인한 상처, 트라우마로 나타나던 모습과 다름을 보여준다. 언제 이렇게 상처가 아물었을까?
아비가일이라는 여성을 만난 이후로 보인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이다. 아비가일이 남편을 심판하려 군대를 동원한 다윗에게 “사내대장부가 그만한 일로 뭐 그러십니까? 쫀쫀하게…” 등의 말로 남편을 두둔하고 다윗의 분노를 돋웠다면 싸움판은 더 커졌을 것이다. 아비가일은 말의 지혜자이다.
“우리 남편, 신경 쓰지 마세요. 장군님 자신의 명성에 신경을 쓰세요. 장군님이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발과 그 가족을 죽인 일이 험담거리로 따라다닌다면 평생 불명예가 될 것이고 장군님 마음에도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대신해서 사과하고 많은 고기와 과일들을 예물로 가져왔으니 받으시고 노를 푸세요! 당신은 틀림없이 왕이 되십니다!”
아비가일은 온유한 여인이었기에 다윗의 분노 이면에 말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간파했다. 말로 받은 상처가 말로 치유된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 함께 마음과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언어 상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결과 시편의 주옥같은 영성의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1~4, 7)

말의 상처로 생기는 분노에 대한 치유책은 원수를 갚거나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이다. 온유는 마음의 영역이면서 언어의 영역이다. 온유함은 ‘거친 질문에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이기에. 다윗은 아비가일에게서 말로 인해 생긴 분노를 치유하는 온유함을 배운 것이다.

강정훈
늘빛교회 담임목사이자 교회학교 교사들의 벗이 되어온 월간 교사의벗 발행인으로 다음세대를 살리고 세우려면 교사들을 세워야 한다는 분명한 사명 아래 ‘교사의 벗’을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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