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크리스마스'를 찾아서

장면 하나.
2018년 서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기도 전에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조성한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전국의 스타벅스 매장들이다. 서울에서는 아직 알록달록한 가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말, 스타벅스는 매장 안 음악을 캐롤로 전부 바꾸고, 크리스마스 음료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시행했다. 몇 년 전만 해도 12월이 되고서야 시작하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언젠가부터 슬며시 11월 1일로 앞당겨지더니 이제는 노란 단풍잎이 절정인 가을 한 가운데에 버젓이 시작되고 있다.

장면 둘.
‘혁명적 비인기 동맹’이란 단체를 들어본 적 있으신지. 이는 2006년에 결성되어 발렌타인 데이, 크리스마스 등의 시즌에 “연애 자본주의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일본 남성들의 모임이다. 연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대표적인 날, “크리스마스 분쇄!”를 외치는 이들의 구호는, 우리 시대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이 정해진 코스에 따라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 하는 동안, 비연애자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그런 날일뿐임을 방증한다. 연애와 자본주의를 묶어 구호를 외친 비인기 동맹. 그날 돈을 쓰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연인들’이라는 것을 간파해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자본주의의 치밀한 전략을 꿰뚫어 본 것은 아닌지.

장면 셋.
이와 더불어 한국에서는 몇 년 전 솔로대첩이란 단체미팅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비록 많은 이들의 헛웃음 속에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그 이벤트 이면에는 크리스마스를 솔로로 보낼 수 없다는 이들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9월 어느 때쯤에는 오늘부터 사귀면 “크리스마스에 100일”이라는 말을 건네며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결심이 격려 받은 특이한 크리스마스 문화.
이 모든 장면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크리스마스에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자본주의 문화가 온갖 미디어를 동원해 연인들을 독려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스타벅스는 누구보다 앞서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로지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는 돈이 된다는 것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이다. 쇼핑의 명절로 전락한 크리스마스에 그 분위기를 즐기며 쇼핑을 하고 커피를 사먹으며 돈을 쓰는 주체는 가족도, 솔로도 아닌 ‘연인들’이기에!
서울, 2018, 크리스마스가 누군가의 이해관계로 이토록 뒤범벅되어 있을 때, 이와 대조적으로 첫 크리스마스는 기존의 사회문화에 대항해 어떤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었을까.

베들레헴, 첫, 크리스마스
첫 크리스마스, 그러니까 예수가 연약한 존재로 이 땅에 온 날의 사회문화적 의미는 예수의 역사적 의미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 우리 시대에 통전적으로 적용하는 신약학자 톰 라이트에게 듣는 것이 제격일 터. 그는 크리스마스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이렇게 읽어낸다.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핵심에는, 당시에 가장 권력 있는 사람에게 너무도 큰 위협이었던 나머지 한 마을의 모든 아기를 죽이게 만든 어떤 아기가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핵심에도, 로마 황제는 몰랐지만, 온 세상의 주(主)가 될 아기가 있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서 그 아기의 추종자들은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여겨져 제국의 박해를 받을 것이다. 탄생부터 그 이후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당신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사람들은 분명히 그분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예수님은 그들의 권력 게임을 뒤집어 엎으셨고, 그런 사람들이 보통 맞이하는 운명을 겪으셨다. …메시아 예수의 복음은 혼란과 긴장 그리고 폭력과 공포가 자욱한 시공간에서 탄생한 것이다. 평화로운 크리스마스의 정경일랑 다들 지워 버리시길 바란다. 평화의 왕은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 목에 현상금이 걸린, 집 없는 난민이었다.”

물론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기억할 수 있지만 성경이 전해주는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회 질서를 위협할 정도의 존재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였으므로. 우리는 집 없는 난민으로 오셔서 기득권 질서에 새로운 법을 세우신 연약한 한 존재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리라. 온 힘을 다해.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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