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꿈을 100가지만 서보세요.” 누군가 이런 주문을 하였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 100가지의 꿈을 모두 쓸 수 있을까요? 어느 기자의 글에서는 100가지는커녕 스무 가지도 제대로 쓰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기자는 100가지의 꿈을 쓰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아주 작고 소박한 꿈, 꿈이라고 말하기에도 하찮아 보이는 것까지 쓸 때 가능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아침마다 우유 한 컵 마시기, 5층 이하의 아파트는 걸어서 오르내리기, 일주일에 세 번은 땀 흘리며 운동하기 등이 모두 꿈이라는 항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소박한 꿈들, 마치 습관 같은 것들을 이루어나가면서 그는 성취감을 느꼈는데, 그것이 ‘성공’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럴듯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도 꿈은 창가에 올려놓은 화병에 예쁜 꽃 몇 송이를 꽂는 일처럼 사소하고 소박하게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을 때 그 꿈은 허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천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때 우리의 꿈은 그 다음의 꿈을 이루어내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머나 먼 곳에 있는 꿈이 아닌, 오늘 하루의 꿈을 만드는 데 함께 나서기를 제안합니다. 꿈은 움직입니다. 오늘의 꿈을 이룸으로써 내일의 꿈을 꾸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꿈을 손으로 잡고 눈으로 봄으로써 우리의 일상은 비로소 꿈을 이루는 즐거움에 활력을 지닐 것입니다.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모두 하루의 꿈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던 바울 사도와, 일일일생(一日一生)의 삶을 이야기하였던 우찌무라 간조도 어쩌면 하루의 꿈을 만들고, 그 꿈을 이룸으로써 삶 곧 생에 이르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삼백 예순 날을 살아갈 때 우리 앞엔 한 해의 꿈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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