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록이 가져다주는 선물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자, 어떡해야 온 가족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지 고민됐다. 그러던 중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옷장 한 구석, 낡고 오래된 사진첩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에는 젊은 모습의 아버지, 어머니, 어린 우리 5남매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온 가족이 마당에 서서 찍은 사진, 수영장 대신 일명 ‘빨간 고무다라이’에서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 누나와 나의 사진 등. 그런데 많은 사진 중 체구는 작으시지만 단단한 몸을 가진 젊은 아버지 모습에 눈길이 멈춘다. 늙고 연약한 아버지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왠지 낯설었다. 내 추억 속엔 젊은 아버지 모습이 없었다. 문득 ‘젊은 모습으로 아버지께서 나타나시면 우리 5남매 형제들은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래서 추도식 때 아버지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어 온 가족들과 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어머니께 앨범을 빌려 그중 아버지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진 속 아버지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5남매를 책임져야 하는 40대 한 가장의 힘겨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사진 속 모습에서 현재 40대인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버지, 당신도 힘들고 두려우셨죠? 우리 5남매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말이에요. 그 힘든 무게에 포기하고 싶으신 적도 많으셨겠죠?’
자꾸 눈물이 났다. 왜 여태껏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40여 장의 사진을 골라 스캔을 받아 영상을 만들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배경음악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노래로 하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노래가 무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어릴 적 종종 아버지께서 누우셔서 노래를 부르시며 우시던 모습만 떠올랐다. 아버지는 왜 우셨을까. 무슨 사연이 있으시기에 그토록 애달프게 부르셨을까.

기일 당일 추도예배를 마치고 저녁식사 전 살며시 영상을 틀었다. 서서히 지나가는 젊은 아버지 모습, 아버지‧어머니 결혼사진, 어린 자녀들을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아버지 모습. 다들 조용히 화면만 바라본다. 수군거리며 웃는다. 누나는 어린 시절 모습을 매형한테 들켜서인지 무안해하고, 형들은 ‘우리 아버지, 정말 잘 생기셨네’ 한다.
조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며 신기해한다. 온 가족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쌓여가는 그 밤, 온 가족이 행복했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기억 속 아버지 모습 그리고 아련한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송진명
듣는마음교회 목사이며,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목회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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