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록이 가져다주는 선물

평전 <움품>은 평생을 농부로 산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최왕용 씨는 올해로 구순(九旬). 살아온 시간 대부분을 보냈던 전라북도 정읍에서 지금도 살고 계시다. 슬하에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고, 이제 손주 아홉에 증손주가 셋이다.
‘움품’은 아버지의 인생을 요약한 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라 부른 이는 넷. 어린 나이에 친어머니를 여의었고,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갓 스물이 되었을 때부터 양부모를 다 잃고 고아처럼 살아야 했다. 나무를 베어낸 뿌리에서 난 싹을 ‘움’이라 한다. 아버지의 삶은 ‘움’ 같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그랬듯 아버지 역시 가난과 고통 가운데 살았지만 견디며 살아냈고 우리 형제들은 그 ‘품’ 안에서 자라났다.

올해 음력으로 4월 15일은 아버지의 구순 생신이셨다. 그날 가족들에게 오래전부터 가졌던 생각을 꺼내놓았다. 아버지 인생을 책으로 엮고 싶다고. 다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아버지는 특별한 배움이 없으셨고, 평생 농사를 지으셨으며, 내세울 만한 어떤 이력도 없는 분이다. 고등학교 다닐 즈음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나도 어디 가면 자랑할 자식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내게만 했는지 다른 형제들에게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은 허사가 된 듯하다. 다만 너무 가진 자도, 너무 똑똑한 자도 없기에 그저 우애하며 살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삶이 실패한 것일까? 이것이 ‘움품’을 만들며 가진 기본 질문이었다. 답은 “아니오”이다. 남들은 부족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식으로서는 그럴 수 없다. 아버지의 삶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도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 참 잘 사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료를 모아야 했다. 틈나는 대로 고향으로 내려갔고 아버지와 인터뷰했다. 몇 차례 인터뷰 끝에 태어나서 결혼하기까지의 삶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를 낳고 키운 이야기를 들을 차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사코 말씀하시기를 주저하셨다.
“어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안다냐. 그저 남들 살아온 이야기는 내가 보니까 알지.”
이러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늘 주면서도 미안한 게 부모이다. 더 오래된 일을 기억해 내면서도 정작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미안함 때문이었을 게다.
그때 형제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마다 다섯 가지 이상 이야기를 정리해 보내달라고 부탁해 오남매 부부 모두 참여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인터뷰하러 내려간 어느 날, 한국전쟁 시기 빨치산에게 처형당할 뻔한 장소인 옥정초등학교 근처에 함께 간 일이 있다.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비장함과 슬픔이 섞인 표정이었다. 남아있던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이겠구나. 그래서 아쉽다. 이야기 속 장소를 하나씩 찾아가 그 사건들과 화해하고 용서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 걸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데 가족이 함께 참여하길 원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삽화를 맡기고, 조카에게 교정을 맡겼다. 교정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안온한 표정 뒤에 있는 할아버지의 힘겨웠던 삶을 잠시나마 본 것이다.
이야기를 모으다 보니, 같은 사건인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많았다. 덕분에 한 사건을 다양한 각도로 보게 되었다.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고,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 속에는 형제들의 배려와 사랑이 곳곳에 숨어있어 모두가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모두가 공유하는 유산이 생겼다. ‘이야기’라는 유산이다. 많은 이들이 내세울 만한 것 하나 없이 삶을 마감한다. 그렇다고 그 삶이 시시한 건 아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만든 책을 보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해. 우리도 하자.”

지난 추석, 우리 가족은 막 나온 책을 한 권씩 들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나씩 낭독했다. 아버지도 함께 한 자리였다. 눈시울이 붉어졌고,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다. 낭독이 끝난 후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고맙다!”

최상규
몸된교회 목사. 건축을 전공했고 그 분야에서 15년을 일한 후 늦깎이로 목사가 되었다. 예수의 제자로서, 서로의 지난날을 살펴 보듬고, 현재를 위해 기도하며, 복된 미래를 꿈꾸며 지지하는 작은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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