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국 약사, 약국에 공부방 마련하고 무료로 가르쳐

경남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에는 특별한 약국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약국 안 작은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들이다. 와글와글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입을 모아 영어를 읽으며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신반 시외버스정류소 옆 부림약국.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약국이지만 저녁이 되면 아이들의 공부방이 시작되는 특별한 장소다. 수업료도, 교재비도 없는 무료 영어 공부방, ‘오뚝이 영어공부방’. 부모들이 억지로 보내는 학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서 달려오는 공부방이다.

영어를 가르치게 된 이유
이 영어공부방을 만든 사람은 김형국 약사(64·마산섬김의교회)이다. 시골 아이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들여 직접 가르쳐주고 있는 것.
“하하, 오뚝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어요.”
1996년 40대 초반 늦깍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김 약사. 캐나다 이민을 위해서 학위와 면허증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언어로 인해 공부하기가 어려웠지만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주는 한의사 면허증을 받고 한의학 박사과정까지 끝내게 되었다.
“캐나다로 가서 정착준비를 하는데, 구순이 넘으신 어머님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큰 형님이 돌아가셨거든요. 결국 다시 2005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쉽지 않은 결론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한국으로 돌아와 꼭 그가 만나야 했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 유학길에서 자신을 애쓰게 만들었던 ‘영어’의 장벽을 신반의 아이들도 고스란히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공감할 수 있었다. 도시와는 달리 변변한 학원 없이 공부하는 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약국을 드나들던 김홍식이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 나와 같이 영어공부하지 않을래?”

오뚝이 영어공부방의 시작
“처음에는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홍식이 아버님께 취지를 설명하고 부탁드렸더니 아이가 왔어요. 그게 2008년입니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위해 약국 심부름을 내내 해왔던 착한 홍식이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고. 그런 홍식이를 붙들고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성적이 오르고 홍식이의 친구도 와서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렇게 전문학원 하나가 제대로 없는 시골마을에서 어찌 보면 공부를 포기했던 아이들이 약국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8평정도 되는 약국 뒷방에 의자랑 책상, 칠판을 갖다놓고 저녁부터 밤까지 공부했다. 아이들의 성적이 놀라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공부방 아이들이 지역 고등학교 전교 1등에서 5등까지를 차지하게 된 것.

“저도 영어 배울 때 글자를 주로 배웠지, 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않아 미국에서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공부방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소리는 소리고 글자는 글자다’라는 개념과 의성어식 발성법입니다. 그 학습법을 통해 확실히 효과를 봤어요. 영어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기 시작하니 영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라지고 즐기는 마음과 열정이 생긴 것이지요.”
김 약사가 유학시절부터 연구해 탄생시킨 의성어식 발성을 통한 학습법은 단어마다 악센트를 넣어서 복식호흡으로 소리 내는 학습으로, 기합을 하듯 영어 단어 하나하나를 힘줘 읽는다. 아, 아까 공부방에서 들려온 소리가 바로 그것이구나.
현재는 13명의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2기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1단계 영어동사 1000개 외우기, 2단계 중학교 과정 어휘, 3단계 수능형 어휘, 각 단계별 과제를 마스터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쉬운 문장 하나를 놓고도 12시제를 변경해가며 연습하는 등 문법 전체를 전반적으로 다 파악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배운다. 또한 선배들은 자기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의 공부를 함께 봐주며 자라간다.
숙제도 많이 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부를 많이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율학습의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영어책뿐 아니라 한글책도 필사, 베껴쓰기를 많이 시킨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든 것이 보는 행위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출력 과정을 ‘쓰기’를 통해서 하도록,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각을 하게 하고 템포를 느리게 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지요.”
그렇게 써낸 두꺼운 대학노트들. 김 약사가 맡아두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아이가 힘들어할 때 주려고 한단다.
“너는 이렇게 힘든 것도 해낸 아이니까 지금의 어려움도 잘 이겨낼거야라는 의미지요.”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은 성적만 향상된 것이 아니었다. ‘오뚝이 정신’을 배웠다.
“지금 2기 학생들은 안 그렇지만 1기 학생들은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이 꽤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 그런데 포기를 안했어요. 좌절하지 말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예수님 사랑만 전한 것
아이들을 좀 더 제대로 가르치려고 김 약사는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경남대 교육대학원 영어과에 입학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나누기 위해서 최근에는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시골 약사입니다> 저서도 발간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돈 버는데 사용하게 안 하시고 섬기는데 사용하게 하셨어요. 공부법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 배우게 하신 것 같아요. 전 예수님 사랑만 주면 언젠가 아이들이 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교회 나가자고 한 적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랑한 게 다예요. 이 공부방이 잘 운영되도록 마산은광감리교회(황규선 목사)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어 감사하게도 1기 학생들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2013년 KBS ‘스카우트’ 방송에서 우승해 일찍이 취업에 성공한 김홍식 씨에게 물었다. 학창시절 김형국 약사와 공부한 경험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15세 때 처음 뵈었는데 공부뿐 아니라 늘 자존감을 높여주셨어요. 시험을 못 봐도 ‘네가 뭘 모르는지 알기 위해서 시험을 보는 거다. 너는 재능이 있다. 큰 인물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제 전화번호를 7번에 단축번호로 저장하시고는 ‘왜 내가 7번에 넣었는지 아냐. 홍식이를 생각하면 칠전팔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영어성적이 오르니 자신감이 살아나고 다른 과목 성적도 올라가게 되더란다. 내년에는 대학에 진학하여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나중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꿈을 주고 싶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2기 학생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면 제가 70세가 됩니다. 잘 마무리하고 기회가 된다면 캐나다나 미국에 가서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민자들을 섬기고 돕고 싶어요. 노후에도 계속 섬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라며 그는 인터뷰 마무리에 이런 소원을 말했다.
“아이들이 힘을 내서 오뚝이 같이 살아가길, 그리고 저는 주님께는 기억되고 사람들에게는 잊혀지길 바래요.”
살아가면서 힘들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약국 뒷방에 모여 자신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다 내어주었던 스승과 함께했던 그 시절은 그들을 오뚝이처럼 언제나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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