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생각'을 입혀라-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훈데르트바서는 누구?
훈데르트바서는 1928년에 태어나 2000년에 생을 마치기까지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며 그것을 작품으로 남긴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터전으로 삼고 유태인 어머니, 외할머니와 살다 히틀러에 의해 친척들이 몰살당하는 일을 겪는다. 그 가운데 몇 번 이름을 바꾸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개의 강”이라는 뜻의 훈데르트바서로 이름을 매기며 자신만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표현을 구축해 나간다.
어린 시절, 비엔나 몬테소리 학교에서 ‘색채와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닌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아 두각을 나타낸 이래 단기간 미술 레슨 외에는 에꼴 데 보자르를 자퇴하고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유화물감, 수채물감, 아크릴, 오일,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캔버스 대신 포장지, 나무판, 천 조각 등 다양한 곳에 그림을 그렸다.
건축을 시작한 것은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의 현대 건축물이 메마른 환경을 준다고 여겨 그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펼치기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을 사용해 부드러운 흐름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2009년, 2011년, 2016년도에 작품전이 열린 바 있다.


건축에 곡선을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올라감을 뜻할 것이다. 게다가 기하학적인 곡선이 아니라 자연스런 선을 넣는 일은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써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건물에 들어가 사는 이들이 기쁨을 얻고 바라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며, 그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되지 않을까.

훈데르트바서로 유명해진 마을
필자가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쿤스트하우스 빈)을 관람하고 나와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며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리모델링한 시영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을 찾아가려고 지도를 펼쳤을 때, 한 노신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 가려 하느냐?”고. 그렇다고 하자 자기가 길을 안내하겠다고 하며 길목의 집들을 설명하며 앞서 걸었다. 이 비엔나 주택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후 새롭게 원형을 살려 색칠한 것들인데 연분홍 집은 대문 앞 벽에 여인 이름이 새겨 있어 여성스런 색을 입힌 것이고, 푸른 색 집은 최초의 주인이었을 이름을 따라 남성의 집처럼 단장했다고 했다. 각 집 전면에 새겨진 이름으로 주인이 바뀌어도 ‘집 이름’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문패와 다른 점이었다.
노신사는 몇 년 전까지 시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일을 보러 나갈 때마다 이 길을 지나는 우리와 같은 관광객에게 길을 안내한다고 했다(훈데르트바서 미술관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사이는 주차가 어려운 주택가이고 몇 골목을 지나 도보로만 갈 수 있는 길이다). 비엔나의 명소가 된 이 지역을 귀히 여기는 전직 공무원의 자원봉사가 돋보이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기쁨을 주는 비엔나의 시영 주택
도시로 인구가 몰리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회색의 일률적인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던 80년대, 오스트리아 비엔나시 당국은 50여 가구가 들어갈 이상적인 다세대 주택 건립을 훈데르트바서에게 맡겼다. 그것은 이미 독창적인 색채와 선으로 알려진 그의 작품처럼 공공 주택에 예술적 감각을 입혀보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주변과 안 어울릴 것이라 반대했으나 입주 희망자가 넘쳐났고 86년 준공식엔 7만 명이나 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훈데르트바서는 “창조주는 자로 잰 듯한 직선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며 자연스런 곡선을 창틀과 계단, 복도에 활용했다. 혼자 꿈꾸면 꿈일 뿐이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주장대로 그의 공공주택은 시 행정가와 뜻을 함께 하며 결실을 본 것이다. 각 집에 개성을 담은 색채와 창문을 내며 심지어 나무가 창을 뚫고 나오게도 해 그것을 ‘나무 세입자’라 불렀다.
그는 특히 모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며 이것이 창문에 대한 권리라고까지 말했다. 알록달록한 창틀과 각기 다른 형태의 창을 보며 모자이크 타일을 이용한 높이가 조금 낮은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작은 차이에서 편함과 배려가 바로 다가왔다. 직선의 차가움, 공격성을 줄이고 나니 낭만과 독창성, 다정함과 온화함이 건물로부터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가족 수에 따라 10평대에서 40평대까지 현재 52가구가 살고 있는 이 시영 주택에는 외부인이 들어가 볼 수 없지만, 개인 테라스와 공동 테라스가 있고 사무실과 아이들을 위한 실내 놀이터도 갖춰져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거주자의 초대로 안을 구경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실내 놀이터의 바닥을 언덕처럼 만들어 아이들이 뒹굴 수 있게 했고 쿤스트하우스 빈, 그의 미술관처럼 모자이크 타일로 꾸며 편안하고 아름다운 계단과 복도를 이루며 그 사이에 실내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훈데르트바서는 독일의 다름슈타트와 오스트리아 블루마우 온천 휴양지, 뉴질랜드 등지에 나무와 잔디로 둘러싸인 집을 짓기도 했는데, 언덕을 지붕으로 삼아 땅 속에 집을 지어 자연 단열 효과를 내게 하고, 그 언덕 지붕을 잔디 산책로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어쩌면 호주의 캔버라가 이것을 모델로 삼았나 하는 질문이 생겼다. 얼마 전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있는 국회의사당 지붕의 잔디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며 놀라던 기억이 나서다.
훈데르트바서는 또한 빗물이나 소변을, 실내에 둔 식물에 단계적으로 거치며 자연 정수가 되도록 한 시스템을 시도하고 부식토를 이용한 자연 변기를 만들어 물을 아끼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앞서간 주창들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리아에서 ‘환경 보호상’과 ‘자연 보호상’을 안겨 주었고,그를 지지하는 뉴질랜드에서는 훈데르트바서 환경 주간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D.C 등지에서는 훈데르트바서의 날을 선포해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패시브 하우스를 열어야 할 시대
환경과 연료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이 시대에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패시브 하우스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집이다.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는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 2009년부터 패시브 하우스 기준을 세워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3중 유리창과 일반 건축의 3배에 해당하는 30센티미터의 단열재 쓰기다. 이렇게 하면 건축비가 1제곱미터 당 50만원 정도 더 들지만 여름엔 열 차단 효과로 26도를 유지하며, 겨울엔 보온 효과로 20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집을 남향으로 앉히며, 태양광 패널 사용 등을 더하면 연료비는 10분의 1로 떨어진다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준에 맞춰 건축을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어 그 수요가 더욱 넓혀지길 바라는 시점이다.

초등학교 앞에 이런 건물이 있다면
한 건물에 여러 가구를 넣어 경제적으로 건축하는 것, 편리하게 더 넓게 살기 위해 네모로 집을 짓는 데서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바라보고만 있어도 감동이 오고 자연스런 존재감 속에서 새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집을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값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그런 집 그림이다.
다세대 주택, 연립주택,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동네를 오가면서 적어도 초등학교 앞에 이런 집이 있다면 외형을 통해 아이들에게 훈데르트바서 스타일의 자유로운 개성을 드러내는 꿈을 심어주고, 안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패시브 하우스 모델로 가르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윈스턴 처칠이 “우리가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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