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임팩트 맨>,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북하우스, 2010년, 368쪽

비가 내리면 큰 건물 입구마다 우산 비닐 커버 포장기가 놓인다. 잠깐의 용도를 다하고 버려지는 수많은 비닐 커버가 눈에 거슬리는 것은 요즘 같아서는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다.
우스갯소리로 지금 우리네 삶이 조선시대 임금님 수준보다 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공감했다. 무더위에 시원한 촉감의 기능성 속옷 하나 걸치고 선풍기나 에어컨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전혀 호사스럽다고 여기지 못할 만큼 풍요롭다. 하지만 동시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일하느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줄었고, 심지어 그 일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는 풍요속 공허함은 여기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사뭇 진지하게 고민해도 특별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쯤 의외의 방향에서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 <노 임팩트 맨(No Impact Man)>을 만났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언맨’, ‘앤트 맨’,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영화 속 영웅들이 현란한 ‘임팩트(충격)’를 남기며 지구를 구한다면 ‘노 임팩트 맨’은 거꾸로 ‘임팩트’를 남기지 않는 방법으로 지구를 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웅’의 활약상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처분만 기다리는 무력한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노 임팩트 맨’은 우리가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공기는 온실가스와 먼지와 방사능으로 채우고, 땅은 온통 썩지 않는 쓰레기로 메우며, 물은 플라스틱과 유독물질로 채운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탄생했다. 후회 없이 신나게 즐기며 행복감에 젖어들지도 못하면서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화가 난 것이다.

그래! 다 좋다. 지구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거 안다. 하지만 유기농 농산물이 때로는 환경 비친화적일 수 있고, 전기차에 사용된 폐기 배터리가 지구를 더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모두가 환경공학자가 되어 공부해야만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에 빠지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노 임팩트 맨’이 되었다고 해서 함께 사는 가족의 소소한 행복마저 매몰차게 가로막아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하게 된다. 다행히 책에서 소개하는 메노미니족의 예는 ‘노 임팩트 맨’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영감을 준다.
미국 위스콘신 지역의 메노미니족은 오랫동안 나무를 베어 내다 팔았다. 1870년에 메노미니족이 9,510헥타르의 땅에 보유한 입목이 13억 보드피트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이 벌채한 양은 그 숫자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22억 5천만 보드피트였다고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메노미니족의 방식은 튼튼한 어미나무는 건드리지 않고, 주변 나무만 베어내는 방식으로서 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구의 자원을 쓸 때 원금이 아니라 배당금으로 사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생각 없는 소비로 흥청거리지도 않고 수도승처럼 금욕하지도 않는 중용의 길이다. ‘아껴 쓰라’는 가르침에는 뭔가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바로 ‘주어진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단순한 믿음’이다.
당장 오늘부터 이걸 고치려고 저걸 사고, 이게 더 좋다니까 저걸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만큼 소중한 내 인생 자원 또한 재물과 성공에 팔지 않고 대신 삶을 더 많이 사랑하는 데 쓸 것이다.
‘노 임팩트 맨’이 되고 나니 내가 뭔가 체제 전복적인 인물이 된 것처럼 유치한 반항심으로 ‘과시적 비소비’를 즐기는 듯도 하다. 캠페인 카피도 정했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는 ‘와칸다 포에버(Wakanda Forever)? 어스 포에버(Earth Forever)!’,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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