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이의 나무읽기 <1>

마을 사람 대부분이 논과 밭을 일구었던 우리 동네는 나지막한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어린 시절부터 나무와 벗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꽃을 씹으면 꿀이 나오는 아까시나무는 작은 잎을 똑똑 따며 무언가의 가부(可否)를 점쳐보기에 요긴한 친구였습니다. 또한 마을 한가운데에서 마을과 역사를 함께한 한오백년된 느티나무 아래 평상은 어른과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 어떤 의미로 스며든 나무들 중 몇몇 나무들은 그 줄기를 볼 때마다 불쌍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가령 포도나무의 수피(나무줄기의 껍질)가 세로로 쪽쪽 갈라져서 자꾸 벗겨지고, 양버즘나무나 산딸나무의 수피가 얼룩덜룩하거나, 산계곡부의 물박달나무 수피가 켜켜이 갈라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특히 그랬습니다. 이는 필시 나무가 아프거나 이상한 것, 즉 어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이와 같은 마음은 나무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목학을 배우고, 나무를 하나하나 배워갈 때, 비로소 나무의 생긴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사람마다 피부의 색과 결이 다르듯이 나무도 수피의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릅니다. 간혹 병에 걸리거나 동물의 공격을 받아 나무줄기에 혹이나 상처가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무의 종(種)에 따라, 나이에 따라 고유의 결을 드러내며 삽니다. 그간 생긴 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을 제가 단단히 오해한 것이지요.
어릴 때부터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온 저도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나무를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연의 생명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고유의 생김새를 ‘이상한 것’으로 함부로 판단해버리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 그 고유의 결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그럴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너는 너로구나! 너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구나!’
나 자신도 누군가 그렇게 바라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다 잃어가던 생기도 다시 찾게 되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과 ‘인정’하는 태도에는 ‘살리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어갈 서툴지만 ‘그 존재자체로는 헤아릴 수 없이 완전한 나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살리는’ 창문이 되어주기를 바라봅니다.

박고은
필자는 서울대학교에서 산림환경학을 전공, 건조지에 서식하는 비술나무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로서 우리나라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과 높은 산의 침엽수가 후대를 잇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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