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의사들만 놀라는 성경구절이 더러 있다. 마가복음 8장 22~25절이 그중 하나다. 여기서 벳새다 맹인을 위해 예수님은 2번 안수기도를 하신다. 첫 번째 기도 후 맹인은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했고, 다시 안수 하신 후에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다.
왜 예수님은 맹인의 시력회복을 위해 2번 안수기도를 하셨을까?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눈으로부터 대뇌까지 이어지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눈에서 ‘보는’ 과정이고 두 번째는 본 것을 대뇌 후두엽에서 ‘판독’하는 과정이다. 눈앞에 있는 물체에서 반사되어 나온 빛은 눈 안의 신경막에 상이 맺힌 후 일종의 전기신호가 발생하는데, 이 전기신호는 시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되어 판독된다.

본다는 과정 자체는 안구에서부터 대뇌 후두엽까지 어느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전체가 제 기능을 못한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종의 기원> 중에 한 장을 “돌연변이 이론의 문제점들”에 할애했는데, 눈같이 극도로 완벽하고 복잡한 기관들을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가정하기에는 솔직히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기술했다. 먼저 안구가 존재했고, 이후 안구를 후두엽과 연결해주는 시신경이 진화했을까?
그들은 다른 부분이 진화하기 위해 서로 기다려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보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모든 기관들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안수는 눈의 회복을 위한, 두 번째 안수는 후두엽의 시각중추 회복을 위한 안수였을 것이다. 마가는 시력의 신경생리학적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맹인의 입장에서 시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잘 기록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와 그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불과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예수님이 두 번 안수하셨다는 성경구절은 천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의사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성경을 이성과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필자는 의사로서 성경 곳곳에 숨어있는 말씀의 진리를 발견할 때마다 전율하게 된다. 이 칼럼이 성경과 의학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의사 눈으로 읽는 성경이야기’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해당 코너를 마무리합니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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