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립산림과학원 박고은 박사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끄트머리에는 꼭 ‘사람’이 있다. 숲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행위가 결국 사람을 보호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론으로 드러나고, 사람을 사랑하다보니 그 사람들을 품고 있는 숲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환경지킴이’가 된 이유
국립산림과학원 박고은 박사(기후변화생태연구과·임업연구사·사진 좌)가 나무를, 숲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화정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인환 목사의 딸이기도 한 박고은 박사는 6살 때부터 안산 화정리에서 살아왔다.
“그땐 화정리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다 논이고 진짜 시골이었지요. 흙 만지고 노는 것이 일상인 삶을 살다가 5학년 때쯤인가 송전탑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 이후 교회 마당에 산짐승들이 도망치듯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살 곳을 잃어버린 것인지 너무 안타까웠지요. 또한 중학교 때 산허리를 관통하는 4차선 도로가 생겼어요. 그 공사 이후로 교통은 편해졌지만 동네 안에서 이웃들과 소작물을 나누던 풍경이 사라졌지요. 모두 가지고 나가서 팔면 되니까. ‘아, 환경이 변하면 자연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전반적인 관계가 변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로를 놓고 기도하던 중 ‘환경지킴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앞서의 경험을 더해 기후재앙, 기후변화 등에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중에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 생각해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더 쌓고 싶어서 몽골과 중국 건조지역에 많이 있는 비술나무에 대해서 연구하며 박사과정을 마쳤다.
“산림이 훼손된 것을 복원하는 일에 쓰임 받고 싶었어요. 또한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과 다음세대를 위해서 쓰임 받고 싶어요.”

인생키워드 ‘회복’
산림과 환경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세대를 이야기하는 박고은 박사. 이유가 있었다.
“교회에서 제가 가르친 유예은이란 아이가 세월호에 갇혀 있다는 것을 해외 출장 가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국 떠나보냈지요. 너무나 슬펐습니다.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회복, 그 ‘회복’이 제 인생의 키워드가 되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교회학교 학생들과 유예은 학생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1년 정도 글쓰기를 했고, 그 글들을 모아 작년에 가제본으로 <예은아, 안녕> 책을 내기도 했다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회복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한국 고산지대 숲에서 일어나는 상황과도 연결시켜 생각할 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최근 박고은 박사 연구 주제는 1,000미터 이상 되는 고산지대의 침엽수들이 기후 변화 등의 이유로 고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한라산 구상나무숲이 고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무, 후대림도 잘 발견되지 않아 가까운 미래에 구상나무가 사라질 우려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한 구상나무의 한라산 분포 면적인 세계 최대 규모인데 말입니다. 문제는 어린 나무가 나오지 않아 후대를 위해서 어떤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지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박 박사가 직접 찍은 어린 나무 사진(사진 우)을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겨우 2~3cm밖에 안 되는 여리고 작은 풀이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너무나 작지요. 이게 소나무고, 이게 잣나무예요. 이 풀들이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는 것이지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풀로 보이겠지만 저는 알아보고 인사하지요. ‘네가 여기 있었구나’라고.”

다음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라나는 어린 나무에게 눈길을 주는 것 모두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러니 예쁜 야생화 하나 꺾겠다고 등산로를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4월~7월에는 어린 나무들이 싹트는 시기이므로 큰 나무가 될 어린 나무가 한 번 밟히면 끝납니다. 저는 숲을 바라보는 것도, 다음세대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봐요. 아직 어리지만 큰 나무가 될 존재로 바라보는 것, 그것을 지켜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보다 따뜻하고 넉넉하며, 미래까지 가닿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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