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이경림 대표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왜 안 와요?”
아이가 묻는다. 말이 입술 끝에 머무르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네 아빠가 지금 있는 곳은 교도소고, 아직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아이가 부끄러워 할까봐, 상처 받을까봐 비밀로 감춘다. 그게 맞는 거라 생각해서 외국에 일하러 가서 바쁘다는 속없는 얘기만 또 반복한다.
늦은 밤, 아이는 생각한다. ‘왜 아빠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아? 왜 전화 한통도 없어? 아빠는 더 이상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 건가?’

수감자 자녀를 돕게 된 이유
“나이가 어린 수감자 자녀일수록 부모 수감 사실을 비밀로 하는 가정이 많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부모 수감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감자 자녀, 우리나라 전체 아동 가운데 약 5만 명이나 되는 그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감자 자녀와 가족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아동복지전문 기관 ‘세움’의 이경림 대표(사진)가 이렇게 말문을 연다.
“수감자 가족 절반이 가족해체를 경험하고, 이런 위험이 일반가정의 5배나 높지만 복지 사각지대로 남아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수감자 자녀들은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고, 감춰진 제2의 피해자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죄와 수감으로 인해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 아이들의 ‘비밀친구’를 자임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당당히 가족 이야기를 할 수 없고, 그리운 부모를 만나기도 힘든 아이들의 편이 되기 위함입니다.”

사범대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평생 도시 저소득층 가정 아동을 돕는 일을 하다가 2015년 ‘세움’을 시작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교통사고를 낸 아빠가 합의금이 없어 수감되면서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를 옆집 아저씨에게 부탁했는데, 아이는 성적으로 학대받고 결국 쉼터로 오게 되었다. ‘아, 복지사각지대에 수감자 자녀들이 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가복음 9장에 제자들이 누가 크냐며 싸우고 있을 때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셨지요’. 저는 수감자 자녀들이 인생의 가운데에 세워지고 존재로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를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돕는다
부모가 수감되면 불안전한 양육 환경 때문에 자녀는 심리적·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취약하게 되는데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세움이 돌본 누적 가정은 130가정에 이르고, 현재는 평균적으로 60가정, 100명 정도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이미 수감되기 전에 빈곤층이나 가정해체가 된 경우가 많은데 수감 후 5.5배 더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미취학, 초등학생은 월 5만원, 중고등학생은 월 7만원 장학금을 부모가 출소할 때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방문을 하여 참여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데, 신체적인 문제나 외상후 스트레스나 분노조절, 우울 증상이 나타나 심리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를 받게 한다. 또한 양육자 상담 및 긴급 지원, 법률 지원 및 교도소와 연계하여 가족캠프를 하거나 면회가 어려운 자녀들을 면회 동반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반투명 플라스틱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진행하는 15분간의 비접촉면회는 장소변경접견 신청을 해야만 30분의 접촉면회가 가능합니다. 그 30분을 만나기 위해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차를 타고 교도소에 갑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는 30분을 위해 나섭니다. 물리적으로는 멀고 피곤한 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결코 멀지 않고 피곤하지 않은 길, 아이들은 이렇게 떨어져 있는 부모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면회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수감자 자녀들 중 30%만이 면회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멀어서, 시간과 비용, 용기가 없어서, 동행해 줄 사람이 없어서 면회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함께 가줄 분들이 필요합니다.”

‘덕분에 오늘 우리 미소, 힘찬이, 당찬이 손을 잡고 접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따뜻한 말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요…지금은 저를 대신해 세움이 있고, 미소와 힘찬이가 있기에 무겁기만 했던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볍습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아들에게 못난 아비의 꼴을 보인 것만 같아서 아들과 점점 멀어져만 갔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비가 힘들어 할까봐 다가서지 못해 힘들어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들과 멀어져만 가는 무렵에 세움의 나눔은 저희 부자를 다시 가까워지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 부자는 지금의 힘든 시간들을 서로 위로하며 함께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 수감자 편지 중에서

“아버지의 잦은 수감과 심약한 어머니, 문제만 생기면 시작되는 이웃의 의심. 어린 윤정이는 비행소녀의 길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세움을 만난 후 윤정이는 ‘아버지의 수감은 제 얼룩이었어요. 그러나 이젠 받아들일 수 있어요. 좋아하는 옷은 김치찌개 국물이 좀 묻어도 그냥 입게 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후원자 가운데는 수감자도 있습니다. 지난달 후원자를 만나려고 면회를 갔는데 20대의 너무 젊은 청년인 거예요. 범죄인 줄 모르고 한 일로 초범 2년형을 받게 되었는데 자신의 돈을 쪼개어 후원을 하더군요. 힘들 텐데 왜냐고 물었더니 9살난 아들이 있는데, 아내와 헤어져 이제는 못 만난다고,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라도 돕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버지의 마음인 거지요. 앞으로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아버지의 마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잘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장 안과 담장 밖을 연결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시켜 서로 책임지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인식의 개선 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도 저희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이미 맡겨진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감자 자녀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은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가해자 가족 역시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범죄 가해자와 그의 가족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신상이 공개되는 등의 인권문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죄가 없어요’ 수감자 자녀를 왜곡되게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실제로 ‘세움’은 계속해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다양한 방법으로 벌이고 있다.
“교회들이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재정적인 후원만이 아니라 멘토로, 또는 자차를 운전할 수 있는 봉사자가 하루를 온전히 내어서 아이들과 면회를 가주는 등의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분명 우리의 교회 안에도 이런 아픔을 갖고 있는 가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수감이 ‘위기’일 수 있지 끝도 아니고, 전부도 아닙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삶의 문턱이라 여기게 하고 그 문턱을 같이 넘어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간곡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이경림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부탁했다.
“죄는 영적인 영역이 아닙니까. 저와 저희 직원 모두를 위해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수감자를 만날 때, 아이들을 만날 때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으려면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지원팀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가장 작은 자, 그 아이들이 그릇된 마음 품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돕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홈페이지 : www.iseum.or.kr 02)6929-0936

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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