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중국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자 사회학자 룽잉타이가 쓴 책 <눈으로 하는 작별>(룽잉타이 지음, 사피엔스21)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시간을 돌아보는 책이다. 나이 오십이 넘을 무렵에 룽잉타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이 일이 자신이 연구해온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에 비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깨닫는다.
나도 그러했지 싶다. 청년의 때는 사회적인 이슈들이 언제나 우선이었고, 가족의 이야기는 가정사라는 범주에 가두어 사소하게 처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룽잉타이의 고백처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회적인 이슈들이 사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아졌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온 지난 한 세대를 이해하고, 감사하고, 위로하는 일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갈등하는 사회적인 많은 이슈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룽잉타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써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났다. 그 첫 문장은 이러했다.

“아버지는 1918년 겨울에 태어났다. 우리는 모른다. 후난 산골짜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산골짜기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폭설도 자주 내렸다. 낡은 집은 몰아치는 눈보라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룽잉타이의 여행은 ‘모른다’로 시작하여 ‘모른다’로 끝난다. 일곱 살의 아버지가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학교에서 집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산길을 혼자 걸으면서 무섭지는 않았는지, 아직 어린 티도 벗어나지 못한 열여섯 살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기 위해 당신의 어머니와 어떻게 이별하였는지, 포탄이 날아들고 총성이 멎지 않는 전쟁터에서 아버지는 왜 <장자>를 읽고 <당시唐詩>를 읊었는지, 또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네 아이를 키워 내기까지 얼마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학비를 마련하느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웃에게 돈을 꾸러 다닐 때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야만 했을지, 한 번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지, 그 어느 것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어렴풋이 이해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로저 메인우드 감독)는 아들이 추억한 부모님의 이야기이다.
1928년 런던. 성실한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는 날마다 가정부 에델과 마주쳤다. 매일의 인사가 두 청춘 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사랑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두 사람은 집 한 칸을 렌트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인 공간에서 둘은 요즘말로 ‘작고 확실한 행복’을 가꾸어가기 시작했다. 늦었으나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고, 뜻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생이별을 견디었다.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가고, 엄마가 바라지 않았으나 화가가 되었고, 참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늙어가고, 급기야 에델은 치매로 말미암아 어니스트의 존재조차 까맣게 잃어버린 채 결국 가족들을 떠나갔다. 홀로 남은 아버지는 외로움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엄마 곁으로 또 급히 떠나갔다.
화가인 아들은 성실한 큰 나무처럼 튼튼하게 살다 가신 부모님을 기억하였다.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 한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평범하여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음을, 그래서 두 사람이 살았던 시간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무럭무럭 살아내었음을 고백했다.

지난 호에서 어느 장로님이 어머니의 자서전 쓰기를 도운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어이없게도 부모님의 삶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때로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이별과 맞이한다. 그때는 이미 많은 것이 사라져버린 뒤이다. 하여 다시 제안해본다. 함께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는 모임으로.

◆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는 모임에 초대합니다. 관심을 가진 분들은 ‘아름다운동행’으로 연락해 주십시오.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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