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숲을 만나다 : 숲이 가르쳐주는 공존의 방식

생태계 먹이사슬에 ‘인간’ 포함되어 있다
숲 공부를 할 때 내가 아는 ‘생태계 먹이사슬’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가장 밑바닥에는 식물이 있고, 중간에는 초식동물, 저 맨 끝에는 육식동물이 그려져 있는 생태계 먹이사슬 피라미드는 과거의 나에게 그저 ‘먹고 먹히는’ 관계를 나타내는, 생태계에서 누가 힘이 가장 센가를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연’은 힘 센 놈이 살아남고 약한 것들 위에서 군림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이해된다. ‘적자생존’의 의미도 나는 그렇게 오해하고 살아왔다.
사실 누가 정말 ‘힘’이 센가를 따져 보면, 사자나 맹금류 같은 생태계 피라미드 끝에 있는 육식동물이 아니다. 식물은 한 걸음도 뿌리 내린 터에서 움직이지 못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먹을 것을 만들어 내며 사는 ‘독립영양’ 생물이다. 식물은 물과 공기, 햇빛만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태계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에 가장 경이롭고도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 과정이다.

독립영양을 하는 식물과 종속영양을 하는 동물만 있다면 어떨까. 역시나 생태계 피라미드는 한 순간에 무너진다.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미생물이라는 분해자가 없다면 결국 저 위풍당당한 삼각형 탑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먹이사슬 피라미드는 단순히 포식(捕食)과 피식(被食)의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그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 없이는 한 순간도 생존할 수 없다는 ‘생존을 위한 의존’이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망’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야 한다.
생태계 피라미드에 관한 나의 오해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저 피라미드에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명백히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태계를 이루는 하나의 종인데, 우리는 인간으로서 생태계의 순환 질서를 초월한 존재로 군림해 왔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보호의 이유가 자연이 인간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의 관계 회복은 저 생태계 먹이사슬 안에 인간을 포함시키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의 사소한 행동이 먹이사슬 전체를 교란시키고 파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이미 알게 모르게 막강한 힘을 지닌 생태계의 파괴자로 살아가고 있음도 자각해야 한다.

모두의 생존 위한 협동과 적응 이루어지는 곳
숲은 ‘어떻게 나 아닌 것들과 관계 맺고 살 것인가’라는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생태계는 살벌한 경쟁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는, 그런 곳이 아니다. 경쟁도 물론 이루어지지만 모두의 생존을 위한 협동과 적응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약육강식’의 개념으로 숲을 보면 식물 생존에 필수적인 ‘빛’을 많이 받아먹을 수 없는 키 큰 나무 밑의 작은 나무나 풀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숲에 가면 키 작은 나무, 큰 나무, 다양한 풀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걸 가능하게 해 주는 존재들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밑의 ‘능력자’ 미생물이다. 식물의 뿌리는 균류와 ‘함께 살자’고 제안한 후 ‘균근’이라는 공생체를 형성한다. 이 균근을 통해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만든 양분을 균류에게 제공하고 또 균류는 흙에서 얻은 영양소와 수분을 나무에게 전달한다.

이 균근은 특정 나무 한 그루하고만 동맹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 나무와 저 나무도 연결한다. 그래서 자기 배도 채우고 엄마 나무가 어린 나무에게, 또는 빛이나 영양분이 부족해 비실비실한 나무에게도 물과 영양분을 나눠줄 수 있게 한다. 미생물 덕분에 숲은 땅 밑 균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를 먹이며 공존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된다.
땅 밑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숲에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경외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동물의 사체에 달려드는 파리,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나무토막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다. 모두가 생명의 순환을 위해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인간까지, 지구상의 어떠한 생물체도 ‘나 홀로’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

공존의 방법을 배워야만
다시 적자생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적자(適者)’는 힘이 세서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관계 맺기를 잘 하고, 생태계의 물질 순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동하는 법을 알아서 생태계에 잘 적응한 자를 의미한다. 인간이 ‘적자’가 되어 살아남으려면 나 아닌 다른 생명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마음의 힐링이나 몸의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숲은 ‘겸손’을 가르치는 인간의 가장 좋은, 가장 필요한 스승이다. 아주 작은 미물이라도 생태계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의 곁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세히 자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은정
숲을 사랑하는 사람, 동시에 ‘생태’ 주제의 책을 펴내는 목수책방의 대표 편집자다. 목수책방의 주요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으로, 자연, 생태, 환경, 유기농업에 관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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