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숲을 만나다

트인 바다를 안고 파도소리 들으며 곰솔 숲길을 걸으니 햇빛과 공기와 물이 어울려 최상의 쾌적함이 전해져왔다. 혹시 제주 올레길 7코스? 좋지만 훌쩍 다녀오기엔 좀 멀다. 여기는 서울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태안반도 끝자락 ‘천리포 수목원’(밀러 정원)이다. 사시사철 푸른 생명력을 가진 곰솔, 해송이라고 불리는 숲길을 지나며, 바닷바람과 모래가 섞인 땅에서 꿋꿋이 사는 곰솔나무의 강인함이 이렇게 무리지어 서로를 의지하며 더해지는 것인가 얘기하고 있었다.
“식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식물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곳 천리포 수목원은 말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아름답고 평온한 정원이었다. 국제수목학회로부터 2000년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인증을 아시아 최초로 받은 것도 이런 자연을 살린 아름다움 때문이었으리라. 특히 설립자 칼 훼리스 밀러(민병갈)가 좋아했다는 다양한 색의 목련만도 60여 개국에서 온 7백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관찰과 산책’의 숲 정원으로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온 밀러 씨는 본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오며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민병갈’이 된다. 이 이름은 한국은행에서 만나 의형제가 된 민병도 선생과의 인연에서 지어진 것이고, 그의 삶 역시 13만평의 남이섬을 일구는 민병도 씨와 함께 나무 사랑과 자연의 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지금은 ‘서해안의 푸른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정원이지만 60년대 이 땅은 태안 바닷가에 버려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척박한 곳이었다. 모래가 뒤섞인 땅 3천 평을 매입해 조성하기 시작한 그의 자연 사랑은 70년도부터 숨지던 2002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먼저 그 지형에 적합한 곰솔나무로 울타리를 치듯 해안을 따라 뻗어가게 하고, 음지에서 잘 자라는 호랑가시나무를 많이 심어 겨울에도 빨간 색의 열매를 보게 했다.
2009년부터 공개된 ‘밀러 가든’은 해안을 따라 걷는 솔바람 길 외에 수련과 수변 식물이 자라는 연못습지, 남이섬과 함께 나무 사랑의 우정을 기리는 수풀 길, 목련과 벚나무 동백 매화를 비롯해 크로커스 수선화 석산 등이 화려함을 수놓는 꽃샘 길, 새와 풀벌레 바람 소리를 듣는 소릿길과 한국미를 품은 초가집과 논의 테마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관찰과 산책을 하기에 알맞은 곳, 이야기와 사색이 가능한 곳이다.
앞으로 조성될 침엽수원, 큰골, 낭새섬 등이 이곳을 태안반도의 보석 같은 곳으로 더욱 확대시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든 스테이
일찍이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던 설립자 민병갈 씨는 수목원 조성 초기부터 기와집 여러 채를 수목원 곳곳에 두었다. 교육 프로그램의 장으로도 쓰이고 있는 이 집들은 기존의 기와집에 초가집과 양옥이 더해져 용도에 따라 예약해 사용할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수목원 전문가 교육과정’이 분야 별로 이뤄져 숲 해설가, 유아 숲 지도사, 식물 세밀화가, 수목원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땅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꽃과 이파리들을 들여다보다가 “하나님이 참 화려한 걸 좋아하시네”라고 말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어릴 적에 상상으로 그리던 색색가지 꽃들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꽃들을 보면서였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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