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0주년 맞은 민영진·김명현 부부 이야기

연인인가 보다. 젊은 두 남녀가 서로 반지 낀 손을 들여다보며 좋아하는데, 100일이란 단어가 들리는 것 보니 100일 기념 커플 반지를 맞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들이 예뻐 보였다는 말을 전하니 한마디 한다.
“커플반지 낄 만 해요. 요즘 100일 넘게 사귀면 오래 사귀는 거래요.”
그래,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100일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해 50년을 산다는 것은 더 더욱 쉬운 일도, 평범한 일도 아닐 터.
평생을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 박사(78·대한성서공회 전 총무)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김명현 이사(74·전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풀어놓은 이야기에는 그 시간을 지켜낼 수 있었던 대단한 비결보다 그 시간을 서로에게 ‘선물’ 할 수 있었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남자, 그 여자, 만나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들어가 남편을 만나게 되었어요. 데이트를 하며 철로가 놓인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에게 시를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윤동주의 ‘서시’를 좋아한다고 하니 외워보라고 해서 단숨에 외었지요. 그랬더니 시에서 나오는 ‘나에게 주어진 길’이란 표현을 들면서 ‘당신에게 있어 주어진 길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거침없이 ‘지게꾼 하나 잡는 것’이라고 대답한 그녀에게 남자가 들려준 대답은 걸작이었다. “그럼 나에게 주어진 길은 지게꾼이 되는 길이겠군요.”
요즘의 프러포즈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지금까지 여전히 지게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민 박사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당연히 하얀 웨딩드레스 예쁘게 입고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침례교 목사님이셨던 시아버님께서 ‘민 씨 집 개혼에 며느리는 꼭 한복을 입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랑 놓칠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한복을 입고 결혼했지만 평생 속상하고 억울했어요. 결혼식에 한복을 입어야 한다면 신랑도 당연히 같이 입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고 물으면서요.”
결국 어느 날 민 박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설교에서 아내 이야기를 전했다.
‘제 아내가 자기 뜻이 좌절된 경험을 호소도 하지 않고 아무런 불평도 없이 묵종하고 살았다면 대를 물려 우리 며느리에게도 한복을 입고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을지 모릅니다. 결국 한 여성의 꾸준한 주장과 도전이 상황도 변화시키고, 한 남성을 진보하게 한 셈입니다.’
그 결과 두 며느리는 한복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였다. 그리고 김 이사는 올해 결혼 50주년을 맞아 그렇게 소원하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진짜 행복하고 좋았어요. 당신도 좋았지요?”

슬픔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여전히 서로 장난하고 웃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이지만, 말 못할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면 그저 함께 있으며 기도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유학 시절,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임신 7개월에 재래시장에 가 장을 봐오던 아내는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 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아픈 배를 틀어쥐고 몇 십 번을 멈추며 돌아온 그녀가 낳은 셋째 아들은 15시간이란 짧은 시간을 살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남편이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사울 언덕’에 아이를 묻고 돌아와 얼마나 크게 흐느끼며 우는지….”
그때 아버지의 심정은 절절한 추모의 시로 표현되었다.

…예루살렘 시청이 마련해준 성지의 땅 한 뼘 얻고 보니, / 행려병사자 묘역이더라 / ‘우리 아이 행려병자 아니라’고, / 착한 묘 자리 달라고 사정도 해 보다가, / 성지에서 그만한 땅도 어디냐 싶은 생각에 / 그것만도 감지덕지란 생각이 들어 / 더는 떼를 못 썼다…
- <사울 언덕> 중에서


1977년 3월 예루살렘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둘째 아들이 임파선 암이 걸렸을 때에도 부부는 그저 서로의 곁을 지키며 기도했다.
“약물치료를 하는데 아이가 너무 머리가 아프다고 양손으로 머리를 쳐대는 거예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우리가 감히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우리 가정에 천사를 6년 동안이나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 아이가 더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라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이를 고쳐주셨어요, 지금은 목회자가 된 우리 아들을 그때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어요.”
자녀교육도 부부는 합을 맞췄다. 사실 자녀교육에서 생각이 다르면 부부끼리 갈등이 있기 쉬운데 부모로서 서로의 생각과 교육방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고등학교 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온 아들에게 민 박사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한식아! 가방만 없어지고 네가 이렇게 있어서 아빠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 가방만 있고 네가 없어졌다면 우리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사하게 돌아와서 기쁘고 고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남편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었어요. 그날 저녁 밥상은 가방은 잃었지만, 성하게 돌아온 아이를 위해 맛있고 정성스럽게 차렸지요. 어려울 때, 외로울 때, 힘들 때 완전히 자기편이며 자기를 이해하는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며 자존감이 굳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향한 이해
이제는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성경 번역과 성경 연구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민 박사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이사로 활동 중인 김 사모는 최근 결혼 50주년을 맞아 책을 출간했다.
산문집 <지구별에서 노닐다>와 민 박사의 시집 <미안하다, 별들아!>와 <공중 도시>가 그것.
“1968년 4월 20일에 결혼해서 올해로 50년이 되었지요. 금혼식에 선물로 부부가 함께 책을 내서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안하다, 별들아!>란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지구별에서 노닐다>와 짝을 이룬 제목일 것이겠지만.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며 점수를 줄 때 미안한 마음이 많았어요. 지금은 반짝거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 이 모든 학생들이 반짝거리게 될 텐데. 아직 ‘빛이 도착하지 않은 별’이지만 학생들 모두 별인 것이지요. 어쩔 수 없이 성적을 매기지만 ‘당신들은 빛을 지닌 별’이라는 이해를 담은 표현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지구별에 보내신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구별에 와서 마음껏 놀고 남편과 동행하다가 이 다음에 하나님께 가면 행복하게, 참 잘 놀다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구별을 떠날 때가 있을 것을 얘기하니 ‘그래 언젠가, 누군가는 먼저 떠나게 될 텐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묵직한 그 이야기를 부부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당신은 그동안 복을 많이 받았으니, 먼저 죽는 복은 나한테 양보하라고 했어요.”
“아내에게 그 복을 양보하려고 해요. 그래서 요리학원 다니려고요.”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민 박사의 시 <염>에는 눈물어린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혼자 남는 것 싫다고 / 당신 먼저 갔으면 좋겠다니 /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 내가 당신 염을 하게 된다면
당신 눈 쓸어 감기고 / 턱 고여 입 다물게 하고 / 당신 몸 꼭꼭 주물러 가지런히 펼게 // …단아한 당신 몸에 / 함께 준비한 수의 / 곱게 입힐게…



“사람들은 물어요. 부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부부는 길을 같이 걸어가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개별적으로 독특한 존재이기에 함께 걸어가는 것은, 게다가 50년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허락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은혜이지요. 먼 길 가는 반려자인데 동행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배려’이지요. 앞으로 남은 인생도 서로 ‘배려’할 때 아름다울 것입니다.”

50년 동행의 비결은 ‘배려’라는 진심이었구나. 시간의 주름 속에는 골골이 그 배려가 박혀 있는 거였구나. 민영진 박사와 김명현 이사 부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후 다시 한 번 뒤돌아서 부부의 뒷모습을 보았다. 철길을 걸으며 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연인은 이제 은빛 머리의 노부부가 되었고, 여전히 넘어질세라 서로를 붙들어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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