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박명진 옮김, 민음사, 2017년

* 영화 <걸어도 걸어도> 블루레이 패키지에 사용된 일러스트. 영화가 책보다 못하다거나 책이 영화보다 못하다는 평을 흔히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는 책으로도 영화로도 모두 좋다.

“며칠 전에 차가 ‘펑’ 하고 터지며 멈췄는데 동호회에 가입하고 처리하면 수리비를 안 내도 된다고 하더라고.”
보험사 다니는 친구를 통한 정보일 테지만 장모님은 정말 별의별 방법을 다 아신다.
“그런데 수리하고 검사를 하다 보니까 엔진 어딘가 또 고장이 있어서 그걸 고치려면 돈이 꽤 든다네.”
정비소 심부름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되었구나 싶었다.
“제가 2002년에 사서 타다 드린 거니까 벌써 16년이나 타셨네요. 많은 돈을 주고 고치느니 차라리 다른 차를 알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장모님은 나의 말을 받으셨다.
“나는 이제 작고 낮은 차는 답답해서 못 몰겠더라고. 좀 높이 앉아서 시원하게 바라보며 운전하는 게 좋아. 산OO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장모님께서 이미 결정을 다 내리셨는데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건조한 조언을 건넸다.
“어머니, 요즘 나오는 산OO는 예전 모델이랑 많이 달라요. 차도 훨씬 커서 어머님이 운전하시기 힘들 거구요, 당연히 가격도 비싸고, 연비도 좋지 않아요. 게다가 전기차가 보편화되면 중고차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할 거고, 주유소가 많이 사라져서 주유하기도 힘들겠죠. 미세먼지 때문에 앞으로는 서울 사대문 안처럼 도심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장황한 설명으로 그 자동차를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일일이 열거하였지만 나는 안다. 언제 장모님께서 내 의견을 따르셨던 적이 있었던가. 내 속내를 눈치채셨는지 장모님께서는 입을 닫으시고 이후로는 차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으셨다.

주책없이 장모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소설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 이야기가 우리 집 일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화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우울하지도 않은 별거 아닌 가족의 일상 그대로인지라 위와 같은 우리 집 대화의 한 장면이 소설 속에 끼어들어 간들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장남의 기일에 온 가족이 모여서 마치 명절날처럼 음식을 해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어느 여름날 평범한 하루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장면은 서로에게 끈끈한 추억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가시 돋친 대화이기도 하다. 다정했다가, 냉랭했다가, 어색했다가, 서운했다가, 억울했다가, 그리웠다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감정들이 뒤섞이는 도가니이다.
과연 가족이 아니라면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의 기복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제목처럼 걸어도 걸어도 떼어지지 않는 가족 간의 거리감, 걸어도 걸어도 좁혀지지 않는 가족 간의 거리감은 어설픈 가족애로 포장하지 않고도 묘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생각해보면 남부럽지 않게 잘 살다가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경제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은 장모님께서 이만큼 밝고 적극적으로 사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그러니 장모님이 차에 대해 고민하실 때 좀 더 공감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 그대로, “어머님, 작은 차라도 한 대 사 드리고 싶은데 못 해드려서 죄송해요”라고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로 담백하게 마무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능력 없는 사위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났나? 아니면 남 보기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마땅치 않게 여겨졌나? 정말이지 가족이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조합인 모양이다.
가족 간의 일상적인 상황이었는데 <걸어도 걸어도>를 읽으며 나는 왜 이렇게 며칠 전 장모님과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소설 속 주인공이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뒤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말을 나 역시도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해야 하는 건가보다.
“늘 이런 식이란 말이지. 꼭 한발 늦는단 말이야….”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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