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부산서 ‘못자리’ 역할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는 한 소년과 나무 한 그루가 등장한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나무는 소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나무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이 책이 전 세계 어린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에게 이 ‘나무’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또한 그런 존재에 대한 감사 때문이 아닐까.
부산에는 이런 ‘나무’ 역할을 하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크리스천 문화공간 ‘프라미스랜드’
박후진 대표, 부산 찬양사역자 및 개척교회 세우는 사역 힘써


먼저 올해로 20주년이 된 크리스천 문화 공간 ‘프라미스랜드’(대표 박후진)가 그곳. 부산의 크리스천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곳은 부산 중구 대청동, 용두산공원 입구에 1998년 12월 문을 연 후 지금까지 대표적인 크리스천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부산 동광교회 김승학 장로님과 최정희 권사님이 공간을 마련하셨고, 이후에 제가 함께 일하게 되었지요.”
부산을 방문하는 찬양사역자라면 꼭 들려 공연을 하는 곳, 작은 교회들이 외부에 공개하는 행사를 하고 싶을 때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 청소년들이 찬양을 들으며 쉼을 갖기 원할 때 방문하는 곳. 그런 스토리를 가진 프라미스랜드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이용료가 싸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교회마다 공연 공간이 마련된 경우가 많아져서 예전에 비해서는 공간 대여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간’을 나누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박후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부산의 찬양사역자들을 도와 무대를 마련해주고 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그때 인연을 맺은 이들이 잘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성장해 이곳을 찾아와, 그때 프라미스랜드에서 받았던 은혜로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해줄 때는 많은 감사가 올라오지요.”
박후진 대표에게 가장 큰 보물인 방문자들이 작성한 방명록 노트에는 그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1999년 12월 31일 방명록을 적었던 한 청년이 15년이 지나 다시 자신의 글 밑에 방명록을 적었다.

‘15년을 지나 40대 중반을 앞둔 아저씨가 되어서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긴 시간을 지난 후이지만 같은 자리에 있어준 이 공간이 그리고 이곳을 섬기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깁니다. 또 언제 다시 방문할지 약속할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게 된 지금 다시 반가이 만날 날을 기대하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흔적을 남겨봅니다. 샬롬~♡’

20년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간 유지에 소요되는 최소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춤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미스랜드’가 부산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태국과 제주도 등 사역의 장을 넓히기 위해 노력중인데, 그런 점에서 동역자가 필요했지요.”
김광영 목사와 여종숙 목사가 주중에 ‘더 세움’이란 이름으로 공간사역을 동역하게 되었다.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려 세우겠다는 의미로 학술세미나와 미니콘서트 등 다양한 기획 공연을 마련하는 것.
또한 프라미스랜드는 개척이 어려운 교회들의 첫 시작을 돕는 못자리 역할을 계속 해왔다. 비용 때문에 개척을 엄두조차 못 내는 교회들이 공간을 빌려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자력이 생기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고 있다. 그렇게 프라미스랜드를 거쳐간 교회가 벌써 11개 교회이며, 지난 5월부터 12번째 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에 개척을 결정하고 막막했는데 여기에서 교회를 시작하셨던 선배 목사님께서 프라미스랜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데, 사용료도 저렴하니 개척 초기에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표를 잘 찍고 이제 다른 교회에 양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4월 프라미스랜드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된 가온교회 강동희 목사는 이렇게 전했다.

박후진 대표에게 힘들어도 앞으로 자리를 계속 지킬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저는 프라미스랜드가 공간이지만 ‘운동’으로 봅니다. 초대교회가 함께 공유하고 나누었던 것처럼 프라미스랜드의 정신이 영향력을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공간이 많지 않습니까. 그 공간을 저희처럼 나누어 쓰면 굉장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왜 이리 힘든 길을 가냐고 만류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 흐름대로 따라가 보려고요. 공연, 세미나, 강의, 모임 등 프라미스랜드의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우리는 열려 있습니다.”
대관 문의 : 010-2828-6836(박후진 대표), 010-3138-0946(여종숙 목사)

부산 근현대 미술 조명하는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 부산 1세대 작가 및 지역작가 소개


충청도 광천이 고향인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사진)가 1999년 부산에 미광화랑을 개관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부산이 너무 좋았고, 두 번째는 부산의 근현대 미술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였다.
“항구도시 부산의 1세대 미술이 갖는 특성이 있어요. 타지역에 비해 독창성 있고 바닷가이기 때문에 화통하며, 그림도 다양하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화풍들이 나오더군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파와 6·25 한국전쟁 피란 화가, 토박이 작가가 어우러진 아주 다이내믹하고 개방적이며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산 1세대 작가전 ‘꽃피는 부산항’을 계속해서 해왔다. 팔리지 않아도 좋으니 전시다운 전시, 부산다운 전시를 하자는 마음으로 공간을 열었다. 또한 그는 알려지지 않은 지역작가, 열심히 활동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소개했다. 돈 안 되는 전시회를 왜 계속하느냐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것이 화랑의 공적인 기능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김 대표의 열정이나 사명감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2010년 고 천경자 작가의 딸이 이 미광화랑 기획전을 눈여겨보다가 ‘천경자 전’을 하자고 연락을 해온 것.
“미국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처음에는 믿기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못해요. 큰 화랑을 알아보세요’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당신 화랑을 미리 조사했다, 전시회다운 전시회를 하려고 노력하는 바른 화랑이라는 판단이 들어 연락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10월 전시회를 열자 조그마한 화랑에 하루 200명 씩 3,000명이 다녀갔다. 그때부터 미광화랑은 지역화랑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다고.
“제대하고 부산으로 와 부산여자와 결혼하고 부산에 있는 교회에 다니며 교회학교 교사로 25년간 봉사했어요. 전시회를 앞두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가 넘쳐났지요. ‘천경자 전’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손으로 만져지는 이적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중 성사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말한다. 그 긴 시간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 번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작가다, 좋은 전시회다 여겨지면 남들이 안 하는, 돈이 안 되는 전시회라도 했습니다. 전 그것이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작가들이나 잘 안 팔리는 작가들의 그림을 다시금 소개하는 일. 진실된 예술을 꼭 소개하는 일 말입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자리를 지키는 ‘나무’ 역할을 하고, 못자리 역할을 한 프라미스랜드와 미광화랑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해야 될 일을 하는 것, 성실과 끈기로 그 자리를 지키고 나누는 일, 누군가를 품고 세우는 일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부산=이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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