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쓴 사도 바울은 평생을 괴롭혔던 육체의 가시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의사 누가가 사도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동행한(디모데후서 4:11) 것도 바울의 연약한 육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많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3번 간절히 기도했으나(고린도후서 13:8) 고침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는 주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했다.
과연 그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설은 많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이 심한 안질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을 잠시 멀게 했던 강력한 빛에 의한 손상이라는 주장이다(사도행전 9장). 바울의 안질을 많은 동역자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갈라디아서 4:15)

이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생각나는 분이 있다. 5년 전 논산 교도소의 무기수에게서 우리 병원으로 편지가 왔다. 각막을 기증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 병원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보고 발신지가 안과라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각막 기증 절차를 밟아드리고 기증 서약서를 교도소로 보내드렸다. 며칠 후 서약서에 서명을 한 답신이 왔는데, 함께 온 편지가 나를 울렸다. 편지에는 자신은 살아서 좋은 일을 해 보고 싶은 것이 소망인데 기증서에 보니까 각막을 기증하는 것이 사후 기증으로 되어있어서 실망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지 못해도 상관이 없으니, 지금 당장 자신의 눈을 기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산 사람의 각막을 빼어서 기증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그 무기수는 ‘내가 사후에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하루하루 삶의 의미가 과거와는 다를 것이지만 그의 편지에는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현대 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기이식 중에 가장 많이 시행되는 것이 각막이식술이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눈을 통째로 이식한다는 오해다. 공처럼 생긴 안구에서 현대의학으로 이식할 수 있는 부위는 아직 ‘각막’밖에 없다. 각막은 일반인들이 검은자로 알고 있는 안구의 가장 앞부분에 투명유리 같은 조직인데, 떼어내면 흡사 콘택트렌즈 같다. 만약 각막 이외의 부위에 이상이 있다면 각막이식술은 소용이 없다.
바울의 안질을 안타까워한 동역자들이 그들의 눈이라도 빼어주려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짐작이 간다.
평생 견디기 힘든 안질을 앓으며 전도자의 삶을 산 바울을 생각하면 눈이 아닌 가슴으로 바울서신을 읽을 수밖에 없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