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나를 ‘뿌무이’라고 부릅니다. 백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들은 벌을 받아서 피부에 검은 껍질이 덮여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병으로 죽었을 때 장례식을 하면서 다시 태어나거든 ‘뿌무이’로 태어나라고 통곡하던 어머니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덥치자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말라리아로 1만 명 이상이 죽습니다. 몇 천 원 하는 치료제를 살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난해서 굶어죽고, 풍토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 것은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그보다 몇 배 강한 재앙이 몇 년 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입니다. 처음에는 증세가 말라리아와 너무 비슷해서 특별한 전염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에 걸려 죽어가는 식구들을 살려보겠다고 끌어안고 몸부림치다 같이 감염되어 온 가족이 몰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에볼라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온 세계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 바이러스가 자기들에게 전염될까봐 전 세계는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치료약도, 예방약도 없는 이 전염병은 ‘죽음의 사자’라고 불렸습니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은 왕따를 당했고,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득시글거리는 이 지역 사람들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아무런 발버둥도 쳐보지 못하고 죽어가야만 했습니다.

무너진 교회, 무너진 마음들
그때 저는 그 에볼라가 최초로 발생한 마을 근처에서 교회 개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역은 모두 엉망이 되었고, 건축하던 교회당도 폐허가 되었습니다. 피부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은 물론 교회도 문을 닫게 했고, 전도는커녕 가정방문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당은 우기철 쏟아지는 비에 무너져 내렸고, 교회당으로 오지 못하는 성도들을 찾아다니던 어떤 목회자는 감염되어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칠흑 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역을 다시 추스르고 교회당도 재건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너무 아파하고 있고, 절망 속에서 헤어나올 기운조차 차리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분들은 누군가 자기 종족(키씨)을 몰살시키려고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서방에서는 엄청난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마을에는 쌀 한 포대 들어온 게 없다면서 속았다고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슬림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데 교회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복음의 문이 꽉 막혀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분들 편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려울 때 그 옆에 있어줘야겠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그게 복음을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겁니다.

교회가 내편이라고 말하게 되길
그래서 염소를 나누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생존 싸움을 하고 있는 이 분들에게 실오라기 같은 소망이라도 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염소는 생존력도 강하고 빨리 번식하기 때문에 적격인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부모 잃은 아이들 가정에 먼저 제공해줘서 살아갈 힘을 주려고 합니다. 교회가 내편이라고 말하게 하고 싶습니다.
염소를 도시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사역자들이 산속의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새끼들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염소를 구입하는데 쓰라고 재정을 보내준 고마운 분들 덕분에 일단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나니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눈에 밟히는 가정들만이라도 도와주려면 이것 가지고는 턱도 없이 모자랍니다.
인근 콩고지역에서 다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곧 우기철이 시작되어 6월까지는 마쳐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직접 만나보면 가슴이 아려서 견딜 수 없게 고통받는 영혼들입니다. 멀리 있어도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을 함께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테스크포스팀에 있으며, 미전도종족 선교네트워크 All4UPG 대표를 맡고 있다.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땅 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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