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가족, '받아들이다'

다시 5월, 우리는 ‘가정’에 생각을 집중하며 화목한 가운데 가족구성원이 성장하는 그림을 그려 본다. 큰 소리 내지 않고 평온하게 가족 각자가 삶에 도전하며 자기 자리에서 커간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지시하고 훈계하는 말이 최선이 아님을 아는 요즘, 삶의 지혜를 따라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자세를 갖고 싶어 한다.

결혼 안하겠다고 선언하는 청년세대들, 아이를 안 낳겠다는 신혼부부들, 책임이란 무게에 눌리기 싫어 자유로운 삶을 택하는 이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직장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할까.

나무의 재질을 살리듯이
한 나무 공예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나무를 매일 다루며 깨닫게 된 것은 그 나무의 재질을 살려야 한다는 점이에요. 부드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나무의 독특한 성질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어요.”
그는 이어 말했다.
“그런 생각을 늘 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아내나 아이들의 특별함을 통제하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번 가정의 달 원고에 꼭 맞는 말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배우자와 자녀만큼 우리 자신을 낮추며 겸허히 받아들임을 배우게 하는 상대는 없을 것이다. 그 피할 수 없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다름을 받아들이며 성숙해가는 게 창조주의 섭리이고 그래서 날마다 부딪치며 작은 일들 가운데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받아들임’은 나와 다른 모습들을 만나면 내적인 갈등을 거치게 된다. 객관적으로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 적절한 절충과 타협, 양보가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해 쉽게 받아들인 줄로 여기면 감정이 다시 불쑥 올라오거나, 차츰 반목과 결렬로 가게 되기도 한다.

안전한 테이블
제대로 받아들임을 위해서는 열린 토론이 필요해 그 장(場)으로 ‘안전한 테이블’을 제안한다. 안전한 테이블은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되 혼자 길게 말하지 않도록 발언 시간을 제한하며, 화를 내면 말할 시간 줄어들기 등의 규칙을 정하고 물이나 음료를 마셔가며 이어가도록 권한다.
의견 차이는 당연히 생기는 것이므로 먼저 타당성을 인정해주며 주제를 분명히 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종지를 이뤄야 할 것이다.
유난히 대화나 토론이 안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잘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있다면 그때의 기분이 어땠었나를 회상해 보며 이제 누군가에게도 그런 좋은 경험을 줄 시점인 것을 직시해야 하고, 기억에 없으면 그것이 자신을 완고하게 살게 한 이유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대화의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는 말도 자기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톤과 말들로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펴는지, 스스로 녹음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변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자신의 사고 구성이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며, 어린 시절 성장 가운데 이루어져 왔음을 짚어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삶의 배경 속에서 이해하며 받아들이기 수월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자녀를 대할 때, 받아들여줄 부분과 가르쳐야 할 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부모로서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조심스럽게도 자녀의 행동 양식은 가정에서 보고 배운 대로 한다는 말을 인용할 때, 사춘기 이후 자녀에게 말로 하는 훈육은 별 효과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녀의 문제로 상담실을 찾는 가족들이 면담 중 자녀보다 부모에게 초점이 맞춰질 때 당황하며 불편해하나 문제의 대부분 원인이 거기 있음을 감출 길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이후의 자녀라면 부모의 큰 줄기 사랑을 영양가 없는 잔소리와 바꾸지 않기 위해 말을 줄이고 마음을 받아들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놓친 세월만큼을 헤아리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부부 간 받아들이기
부부 간 다름을 받아들이려면 각자 인간이해를 위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정신과 오은영 전문의에 따르면 사람들 중에는 본래 감정이 밋밋한 경우가 있고 환경이 감정을 누르고 살아올 수밖에 없어 성격 형성이 그렇게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 견디는 힘이 강해 일상 속 얘기가 복잡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반면 기쁨과 벅찬 감정을 곧잘 느끼는 사람은 슬픔이나 괴로움도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끌려 결혼을 하는 걸까. 이마고 부부치료사 하빌 헨드릭스는 ‘어릴 적 채우지 못한 자신의 소망을 얻기 위해 일생 애쓰게 되는데 반대 성향의 사람을 보면 나의 부족을 이 사람이 커버하리라 여기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부가 더 좋은 미래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 자극하면 남들보다 눈에 띄게 성장하는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안에 작은 상처들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반해 부부가 서로의 단점을 알면서도 무작정 한 편이 되어 치켜세우며 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가정 안의 행복은 있지만 자칫 ‘가족 이기주의’가 되어 밖으로는 덕이 되지 못하며 더 나은 성숙의 길을 놓칠 수 있다.
결국 다름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은, 서로 다른 의견을 토론하는 자리와 이해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양보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도 칼럼을 통해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마음과 생각을 조금 비워놓고 양보하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을 바라보며 양보하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숙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

박스 / 청년들의 목소리

다음은, 십대 때부터 학교를 다니기보다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세상을 배우고 살아온 청년들의 목소리다. 20대 중후반.
이 청년들이 세상의 5%일지, 10%일지 모르겠지만,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마음이 끌린다.

1) 청년들이 취업도 결혼도 포기한 취약계층이라고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스무 살에 첫 아이 낳고 스물다섯에 세 아이의 부모가 됐어요.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혼자 일하며 한달에 180만원씩 벌어서 다섯식구가 생활했죠. 정말 아껴야 살 수 있었지만, 불행하다고 느끼기 보다 작은 보람을 얻곤 했어요. 몇 년 열심히 일해 돈모아서 지금은 먹고 살만큼 지내요.”

2) 최저임금과 근로계약에 대해,
“사장님이랑 저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저는 최저임금 정도 받지만 별 문제삼지 않아요. 초창기에 아무 것도 모르고 별 도움도 안되는 저를 가르쳐주며 월급을 주셨잖아요?

3) 비정규직에 대해서요?
“어차피 저는 여기서 오래 일할 생각 없어요. 배우고 나면 다른 일 해봐야죠.”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이란 말을 붙여 오히려 우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4) 요즘 적게 일하는 것이 미덕이고, 뭔가를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여겨지는 트렌드이지만.
“그런 부류의 제 또래들이랑 같이 일하기 싫어요. 일도 대충하고 시간만 때우다 가려고 해요. 걔들이 대충한 일들이 모두 저한테 돌아와요.”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일을 하면 활력이 생겨요. 노는 것보다 이렇게 일하는 게 좋구요.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배우는 거죠.”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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