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가족 '받아들이다'

5월이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단어, 가족. 가족에 대한 드라마와 학문 연구는 넘쳐나지만 정작 가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명절 특집 드라마처럼 가족 간 용서와 화해를 경험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족과 공유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될는지.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는 가족은 한 시인이 날카롭게 그려낸 시의 이미지와 겹칠 때가 더 많다.

밖에선 /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 집에만 가져가면 / 꽃들이 / 화분이 // 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전문).

사실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 특정한 기대로 위축되고, 즐거운 추억보다 트라우마를 선사받는 관계를 가족 안에서 많이 경험하는 게 우리의 익숙한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입양’이란 방식으로 새 가족을 받아들이고,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가족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전보다는 넓은 안목을 갖게 됐다”고 고백하는 책을 만났다. 김경아 작가의 <너라는 우주를 만나>(IVP). 이 책은 두 자녀를 출산해 키우던 작가가 셋째로 ‘희은’이라는 ‘우주’를 입양해 가족의 울타리를 넓혀가는 가정 에세이이자, 가족에 대한 사유가 사회로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회 에세이다.
김경아 작가를 직접 만나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 물었다.

Q. 흔히 가족을 정의내릴 때 유교적 가족윤리에 근거한 면이 많잖아요.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는 현대에도 여전히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인식하고요.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인데요.

- 일단 사전에서 가족을 찾아보면 ‘혼인, 혈연, 입양’을 모두 언급하며 가족을 정의 내려요. 그런데도 교회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가족을 성경적 가족과 등치하는 게 현실이죠. 지금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가정이 꼭 엄마·아빠·자녀로 이루어지거나 같은 피부색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우는데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편협한 채로 머물러 있는 거죠.
입양을 해보니 내가 낳았든 낳지 않았든, 가족으로 사는 데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그건 저뿐 아니라 저처럼 아이를 낳고 입양하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의 틀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죠.

Q. 입양을 결정하신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두 딸을 출산하고 나서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고 싶지 않았어요. 육아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저와 달랐어요. 아이를 좋아해서 셋째도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라며 먼저 입양 이야기를 꺼냈죠. 함께 소속된 IVF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입양도 친구들끼리 이야기했었던 주제였고요. 그래서인지 남편 입에서 입양 이야기가 나왔을 때 무시가 안 되더라고요.
아이들은 ‘독점적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두 아이를 키우며 더 깊어진 때였어요. 세상의 모든 아이는 태어나서 5개월쯤 첫니가 나지만 모든 부모는 마치 자기 아이에게만 그 일이 생기는 것처럼 기뻐하잖아요.
평범한 성장에도 기뻐해주는 일군의 무리, 이걸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의 성장마다 경사라고 여겨주는 열광적인 박수부대요. 아이에게 이런 가족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사회적 책임감이 더해져 입양 결정을 하게 된 거죠.

Q. 그 경험을 통해, 이웃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더 관점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셨는지요.

- 내 아이만 잘 키우는 방식으로 입양을 좁게 바라봤다면 책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IVF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사회적 책임감은 늘 갖고 있었던 편이에요.
그러다 희은이를 입양하고 나니 아이가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절실하게 여기게 됐죠.
사람들이 입양아에 대해 편견을 갖고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과 시선들이 있어요. 아이를 그런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아이로 잘 키워야 할 일도 부모가 할 일이지만 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입양된 아이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했던 선택이 입양 교육 강사가 된 것이었죠.

Q. 책의 전반부는 따뜻한 감동이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냉철해지더라고요.

- 네. 저는 입양을 따뜻하게만 그리고 싶지 않았고, 입양이 얼마나 냉혹한 현실인지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입양을 하고 싶던 이들도 망설이게 될까 걱정도 됐지만 꼭 넣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울타리를 여는 이들에게 복이 있으리니’.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그래서 부제도 인생의 울타리를 넓히는 행복한 선택, 입양이라고 붙였고요. 저는 ‘행복한’은 빼고 싶었지만요. 늘 행복하지만은 않은 게 가족으로 사는 거잖아요.

Q. 우리가 입양 가족이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어떤 가족이나 문제가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요. 우리가 피로 맺어져 있다고 해서 더 끈끈한 건 아니잖아요.

- 맞아요. 사람들은 피에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적일 때 꼭 피의 논리를 들고 나와요. 피가 그렇게 중요했으면 사실 미혼모들이 그렇게 집을 떠나 갈 곳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아이를 낳는 비극은 없어야 되죠. 피가 중요하면 자기 자녀가 임신해온 그 자녀까지 품어야 되는 게 피의 논리, 혈연이죠. 우리나라는 혈연주의라기보다 체면주의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체면과 평판에 해가 되면 가족이더라도 내칠 수 있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말이에요.

Q. 자녀분들에게는 삶에서 우러나온 다른 가족상이 있을 것 같아요.

- 저희 두 딸은 어릴 때 자기 동생 입양한 것을 봤잖아요. 그래서 설명하지 않아도 가족을 이루는 방식에 입양이 자연스레 포함이 됐죠.
그리고 동생 때문에 자기들이 울기도 했고, 또 동생이 놀림을 당하는 것도 봤고요. 그래서 첫째와 둘째는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요. 약자를 돕다가 손해 보는 일도 제법 있었고요. 그렇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사회를 바꾼다고 믿어요.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밖에서 그런 역할을 하느라 힘들어하는 것을 그저 잘했다고 말해줘요.

Q. 희은이네 가족을 보면서 변화된 주변 사람들도 있으시죠?

- 저희가 입양하고 나서 제 가장 친했던 친구도 셋째를 입양했고, IVF 간사들 중에 입양 가족도 여럿 나왔어요. 제 친언니도 입양을 했고요. 또 처음에 염려를 많이 하셨던 저희 어머니는 입양 손녀가 둘이나 생기고 나서는 입양 전도사가 되셔서 친척 중 난임 부부에게 입양해도 자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해요. 경험하니까 달라지는 거죠.

Q.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 지금은 진로와 소명 연구소에서 성교육 강사를 하고 있어요. 이런 배경에는 희은이를 낳아준 엄마가 미혼모였고, 입양아 80% 정도가 미혼모의 아이라는 걸 알아서 였지요. 희은이를 낳아준 엄마는 저희 가족에게 공기와도 같은 존재에요.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사람으로 우리와 동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죠.
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지 않도록 애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준비된 부모가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책에 희은이가 3학년 때 썼던 일기가 나와요. 3학년 때 썼던 그 일기 제목이 ‘우리 가족’인데 거기에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추억을 나누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저는 그 구절이 가족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집약한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않고, 추억을 함께 나누지도 않으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희은이가 가족의 핵심을 잘 짚어줬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서 많이 배웠죠.

혈연으로 맺은 관계만이 가족인 줄 알고 있던 좁다란 의식에 넓은 길이 나고, 가족이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관계로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공동체라는 이해의 폭을 넓히면, 밖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이 집에서도 빛나고 아름답더라는 다른 감수성의 시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혜은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