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참 ‘이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색(思索)’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검색(檢索)’이 입주한 메마른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신중함’보다는 ‘신속함’이 갈채를 받고, 책속의 활자보다는 스크린 영상이 환호를 받는 시대입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마냥 무겁습니다. 문명이 주는 유익과 편리함을 차갑게 거절하자는 이야기를 말하려 함이 아닙니다. 다만 그 편리함을 추구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혹시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제되지 않은 ‘가짜 뉴스’와 일방적 정보들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절대 진리’로 대접받습니다. 그 무분별한 지식과 정보가 삶과 정신까지 지배하며 잘못된 사상을 세뇌시키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촘촘히 돌아보아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삶의 교정(矯正)’이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문득 ‘호모 리플렉텐스(Homo Reflextens)’라는 라틴어 어휘가 떠오릅니다.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Homo)’와 ‘반성하다, 돌아보다’를 의미하는 ‘리플렉토(Reflecto)’가 합성된 것으로서 그 의미는 ‘반성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미물(微物)과 구별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자기 잘못에 대해 스스로에게 가하는 준엄한 비판과 그에 따른 반성일 것입니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속 탈옥수 장발장의 아름다움은 그가 과거의 고난을 딛고 도시의 시장과 재력가가 되었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탈옥수이며 도둑이었던 자신을 가슴으로 용서해주며 “이제부터 그대는 당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미리엘 주교의 음성을 기억하며, 이후 버림받은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 돌봐주고 자신의 많은 부(富)를 ‘약한 자’에게 나누어주는 ‘리플렉토의 삶’을 선택했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진실로 참회하며 흘리는 눈물은 이미 ‘보석의 자격’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자신의 비뚤어진 삶을 인정하고 반성한데 무섭도록 인색합니다. 모든 잘못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는데 예외 없이 천재적 재능을 발휘합니다. 그 결과 ‘잘못된 것’은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경건한 히브리인들이 자기 자녀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주는 단어는 ‘슈브()’입니다. 히브리어 동사인 ‘슈브’란 ‘잘못에서 스스로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인간’이란 종족은 살아남아 있지만 ‘호모 리플렉텐스’는 점차 소멸되어가는 이 시대, 이 5월을 장미의 붉은 색 못지않게 향기로운 ‘반성’이라는 신성한 두 글자를 가슴속에 간직하며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해봅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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