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간 '다르게' 다스려라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로 화제가 됐었다. 여성이 중심이 된 작은 영화를 대통령이 관람한 건 이례적 일이었기 때문.
<미씽>은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왔던 여성들의 삶을 비추어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 상징적 영화였다.

한국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은
<미씽>에는 우리사회의 여러 단면이 문제적으로 제시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싱글맘 지선의 삶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선은 직장에서는 아이 때문에 민폐를 끼치는 직원으로, 이혼 법정에서는 양육에 무능력하고 자기 일에만 매달리는 독종으로 치부된다.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던 지선은 자기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만 하루가 지나도록 알지 못할 정도다.
양육과 유급노동 모두를 책임진 싱글맘 지선의 경우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극명한 ‘타임 푸어’(time poor)의 사례다. 시간을 뜻하는 영단어인 ‘타임(time)’과 가난함을 뜻하는 ‘푸어(poor)’가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로, 일에 쫓겨 자신을 위한 자유 시간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여자의 경우, 부부가 함께 양육과 유급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이는 <타임 푸어>를 쓴 기자 브리짓 슐트가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드러낸 바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겪는 타임 푸어의 배경에는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의 것이라는 가부장제 문화, 과잉 모성 신화, 바쁨이 곧 미덕이라는 문화적 기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기에 더해 최장 노동 시간으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한국에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역시 타임 푸어의 덫에 걸려 있다.
요컨대 누군가가 타임 푸어가 되는 이유는 한 개인의 게으름 혹은 무능력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와 고용불안 및 최장노동시간이 빚어낸 ‘시간빈민’은 현대판 가난이라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을 불문하고 구조화된 불안 속에서 소수의 지배층 외에는 모두 타임 푸어인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만약 당신이 타임 푸어로서 고민하고 있다면 전반적인 사회구조를 보아야한다.

나를 둘러싼 정치사회문화 직시하기
사회구조를 직시하면 먼저 정치제도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짐을 볼 수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모성보호제도가 내 일터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회변화에 따라 거듭 개정되고 있는 이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브리짓 슐트의 제언처럼 탄력근무제 및 재택근무 도입, 일하는 엄마에 대한 차별 철폐 제도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
또한 현대문화에 깊숙이 배어있는 편견들에 맞설 필요도 있다. ‘모성신화’를 만들어내 자녀양육이 마치 여성의 본능인 것처럼 신화화해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문화, 더 나아가 ‘과잉모성’을 요구해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문화, 자신의 분주함을 과시해 하루라도 바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여기는 문화, 바쁨에 휘말려 자신의 ‘존재’를 자연스레 망각하는 태도 등 이에 맞서야만 시간을 확보해나갈 정신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기독교적 대항문화의 삶으로
우리를 공기처럼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거슬러 사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대안적 기준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 바로 성서의 가르침이다.
존 스토트는 산상수훈을 강해하며, “우리가 그 가르침을 따른다면 세상에 진정한 기독교적 대항문화(Christian counter-culture)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쁜 걸 당연시 여기는 문화,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기득권의 방식, 과도한 업무를 부여해 ‘저녁이 있는 삶’을 빼앗는 불의한 현실 등을 거슬러 영혼과 삶을 지키는 윤리를 택해 나간다면, ‘타임 푸어’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일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시편 90:10)이므로.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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