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간 '다르게' 다스려라

우리는 어쩌면 시간이 만들어낸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의 인생은 ‘시간’과의 함수관계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작품 또한 마찬가지여서 한 사람이 가진 재능을 작품으로 구워내기까지 아주 특별한 ‘몰두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몰두의 시간은 날마다 세상의 방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혼자만의 ‘데일리 리추얼(Daily Ritual)’ 곧 종교의식 같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를 치르듯 엄격하게 지켜낸 이들은, 이 반복적인 몰두의 시간들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위대한 창작의 산실로 삼았다.
책 <리추얼>(메이슨 커리 저)은 토머스 홉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지난 400년간 위대한 창조자로 손꼽히는 소설가, 철학자, 작곡가, 건축가, 과학자, 화가, 영화감독 등 161명 지성들이 살아낸 하루하루의 의식, 곧 리추얼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식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한 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반복의 가치와 신비에 대해 잘 증언한다.
“나는 이런 습관을 매일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반복하는데, 그러다 보면 반복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으로, 반복 과정에서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
하루키는 이런 삶을 살기 전에 도쿄에서 재즈카페를 운영했는데,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살이 많이 찌고, 게다가 담배를 하루 60개비씩 피웠다. 이런 습관을 뜯어고치기로 작정하고, 시골로 이사 가서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식사는 채소와 생선을 위주로 바꿨다. 그리고 매일 달리기를 했는데 그 습관을 25년 이상 꾸준히 이어갔다. 예술가에게는 “체력도 예술적 감성만큼 필요하다”는 말을 할 만큼 그는 체력을 잘 가꾸며 창작활동을 했다.
하루키는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초대를 반복하여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관계는 독자와의 관계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생활리듬을 지켜냈다. 즉 독자들은 자신이 더 나은 신작을 발표할 때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소설가로서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래서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을 위해 희생해야 할 일상도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의식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자신만의 리추얼을 가진 작가였다.
그는 “글쓰기는 끔찍한 책임감”이라고도 하고 “끔찍한 글쓰기의 부담감”이라는 표현도 쓸 만큼 글쓰기의 힘겨움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천재였으나 글쓰기가 끔찍할 만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는 방식이 ‘날마다의 의식’이었다.
헤밍웨이는 자만하지 않으려고 그날 쓴 단어의 수를 기록해두었다. 단어의 수로 자만심을 죽이고자 한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가능하면 첫 햇살과 함께 일어나 작업을 시작했다.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시원하다 못해 쌀쌀한 기운에 작업을 시작하다 보면 어느덧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작업은 6시간 정도 이어졌다. 그가 작업을 멈추는 시간은 배고픔을 느낄 때였다. 헤밍웨이는 이런 표현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을 때처럼 배가 고플 때 글쓰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글을 쓸 때까지 나머지 시간을 기다렸다. “다음 날 다시 글을 쓸 때까지 살아남으려고 합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글쓰기는 노동이자 그에게는 특별한 기쁨이었던 셈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리추얼’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낸 그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만큼 묵직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모든 창조는 그런 의식을 수반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일도 어쩌면 고단하면서도 희열에 넘친 당신의 의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지음 받았으므로 어쩌면 우리의 삶은 리추얼, 곧 반복되는 날마다의 의식을 통해서 더 아름다워지고, 소중한 것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추얼이 아름다워질 때 그것을 ‘예배’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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