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아랑이가 며칠 전부터 제대로 걷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털이 많이 빠져서 머리 부분에는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아랑이는 암컷 팬더 마우스(Panda Mouse)이다. 이 품종은 생쥐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위해 개량한 품종으로 아주 작은 몸집에 팬더의 무늬를 가졌으며, 평균수명이 2년 정도인데, 1년 전 우리 집에 올 때 이미 12개월 쯤 되었으니 수명이 거의 다한 셈이었다.
인터넷으로 병원을 검색한 뒤 차로 30분 가까이 걸려서 찾아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얼마예요?”
“10만 5,400원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병원비에 나는 당황했다. 수중에는 5만 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프리랜서 작가로서 나의 생활은 잔고를 채워두고 살 형편이 못 된다. 게다가 혈압약과 핸드폰 충전비용까지 미뤄둔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외상거래를 하고 돌아왔다.

또 하나의 가족
아랑이를 처음 살 때 4,000원이 들었다. 그런데 아랑이와 함께 1년을 보낸 뒤, 아랑이의 가치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랑이의 먹이를 주로 챙기고 돌보아 온 딸은 물론이고 늘 궁핍에 시달리는 아내조차 “돈이 얼마가 들든지 살릴 수만 있다면 살려야지” 하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 집에서 아랑이의 가치는 그 정도였다.
아랑이는 난방비를 아끼느라 집 안에서도 외투를 입고 있어야 하는 우리 집에서 함께 추위를 견뎌 겨울을 보낸 가여운,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렇게 오래 길들여온 관계였고, 그 세월의 사귐은 이미 값을 매길 수가 없었다. 10만 원이 넘는 약값을 지불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이런 모든 일이 그저 아이러니하고 신비로웠다.

아랑이가 떠났다
하지만 아랑이는 일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주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에 죽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집을 나설 때 딸아이는 자꾸만 쓰러지는 아랑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손에 들고 교회로 갔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랑이는 내 손에 누워 있었다. 그 작고 가냘픈 생명이 약간의 체온이 있는 내 손바닥 위에서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꺼져 가는 생명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이 아랑이의 생명도 보살펴 주시기를 나는 기도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배 시간 내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병든 친구를 살려보고자 지붕을 뜯고 침상을 내리던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렇게 함께 예배를 드린 뒤 저녁에는 딸아이가 까준 해바라기 씨를 두 개나 먹어주었고 물까지 마신 뒤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 쓰러져 있는 아랑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더니 고개를 몇 차례 움직이고, 가는 다리를 몇 번 떨다가 호흡이 멎었다. 아침까지 견디다가 내 손에 누워 숨을 멎어준 아랑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작년에 아랑이의 남자친구 도미가 죽었을 때 딸아이는 많이 울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을 오래 가진 덕분인지 우리는 아랑이의 죽음을 도미 때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딸아이와 화단 벚꽃 나무 아래, 그러니까 도미를 묻은 그 자리에 아랑이를 묻었다. 빳빳하게 굳은 작고 동그란 몸이 땅 속에 묻힐 때 또 생각했다. 생명이란, 태어나서 죽는 것이다. 그것은 신비하고 아득한 어떤 것이다.

그리움은 다시 피어난다
그리움은 사무치겠지만 우리의 기억은 또 아랑이와의 시간을 망각해 갈 것이다. 그러나 다시 봄날이 오고, 벚꽃이 가득 필 무렵이면 작디작은 몸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아랑이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슬픔을 그 때쯤엔 위로받을 수 있을까? 오래된 전설처럼 헤어지거나, 사라져버린 그리운 이들이 어딘가에서 꽃처럼 활짝 피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떠나보낸 이별의 무게는 훨씬 가벼울 텐데. 그렇더라도 해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귀 기울여 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린 이들, 그래서 그리움으로 사무친 모든 생명들의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테니까. 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몰랐다. 그리움이 진 자리마다 벚꽃처럼 그리움은 다시 피어난다는 사실을….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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