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부지+독립책방+전통시장

아직 코끝은 시리지만 차가운 공기 사이로 희미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겨우내 움츠러든 몸을 움직여 보면 어떨까.

오래되고 낡은 것들 벗 삼아

최근 서울에서는 ‘개발’보다 ‘재생’을 화두로 삼아 오래된 것을 새롭게 단장해 살려내는 일이 활발하다. 이런 흐름 속에 경춘선 폐선부지도 새로운 숨결을 머금고 경춘선 숲길로 재탄생했다.
1939년 민족 자본으로 만들어진 경춘선 철길은 2010년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될 때까지 엠티의 낭만을 싣고 운행되던 기찻길이었다. 경춘선이 수도권 전철로 편입되어 이제 기찻길로서의 소용은 다 했지만 그 낭만을 간직한 채 시민들의 숲길이 된 것이다.
전체 6.3km 숲길 중에서도 서울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사부터 7호선 태릉입구역까지 걷는 철길은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먹거리가 구비된 구간이다. 그곳을 함께 걸어보자.

독립서점과 카페에서 쉬어가기
고즈넉한 철길을 따라 걸음을 떼고 보니 이곳이 서울이 맞나 싶게 사위가 고요하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진 터라 처음에는 어색하게 다가오던 고요가 점차 사색으로 연결되고, 폐선 된 철길을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시선이 선물같이 주어진다.
걷다가 숲길 공원으로 들어가면 흙과 나무 향기를 맡으며 쉴 수도 있다. 철길과 숲길의 산책이 조금 심심해질 즈음, 나지막한 건물에 들어선 카페들이 오른편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커피 한 잔 하며 쉬고 가라며 맞아 주는 반가운 친구 같다.
철길 오른편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카페들에서 시선을 돌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책人감’이라는 간판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이 근처에 독립서점 한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오래 찾을 것도 없이 바로 눈에 잡히니 반갑다. 그 정도로 낮은 건물들이 편안한 길. 설렘을 안고 들어간 독립서점 겸 카페에 독립출판물 및 일반출판물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가게 안쪽에는 1인용 소파가 마련되어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공간 배치가 돋보인다. 철길 풍경을 보며 책을 볼 수 있도록 놓인 독서바(bar)도 마음에 쏙 든다.
마침 자주 읽던 독립잡지의 최신호가 보여 친한 친구 만난 듯 집어 든다. 서점을 구석구석 구경하며 기존 출판물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재기발랄한 영감을 얻는 건 덤. 태릉입구역 쪽에도 ‘지구불시착’이라는 독립서점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팁. 시장을 가로질러 조금만 걸어가면 하루에 두 군데의 색다른 독립서점을 맛볼 수 있다.

도깨비시장서 칼국수 한 그릇
‘책人감’에서 나와 조금 걸어 나오면 바로 공릉동 도깨비 시장 입구가 보인다. 시장의 공기는 언제 마주해도 생활의 활기로 가득하다. 풍성한 먹거리, 볼거리 속을 거닐며 물건 파는 사람, 물건 사는 사람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 새 짧은 해가 저물어간다.
시장 반대편 입구 어귀에 자리 잡은 식당 앞에 붙은 ‘칼국수 3,000원’이란 가격표에 기꺼운 마음으로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산책과 구경으로 허기진 배를 배불리 채우고 봄을 기다리는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서울에서는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정겹고 자연친화적 산책길에서 크게 새봄을 심호흡해보시기를.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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