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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 곁의 인생
[219호] 2018년 03월 01일 (목) 송태근 @
두 증인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성전 미문(美門)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기도시간에 따라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3장 1절). 여기서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두 사람은 성경 전체 속에서 증인의 수를 의미합니다. 지금부터 나타나는 사건은 역사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사건임을 암시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다 한 광경을 목도합니다. 성전 ‘미문’ 옆에 초라한 행색의 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사도행전 3장 2절). ‘미문’(beautiful gate)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문’이란 의미입니다. 이 문의 또 다른 별명은 ‘golden gate’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한 사람은 헤롯이었습니다. 에서 가문 혈통인 헤롯이 분봉왕으로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이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로마 정부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 땅에 많은 재정을 들여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의 미문을 황금으로 입혀 가장 멋지게 만들었습니다.

성전 앞 앉은뱅이
미문에는 당시 시대 상황 속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종교적 허영심을 충족하려 했으며, 예배를 드리러 갈 때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문에는 ‘유대인의 허영과 교만’이 녹아져 있습니다. 그런 미문 옆에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앉은뱅이가 된 걸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허영심과 교만을 이용하여 먹고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허영심과 선택받은 예배자라는 교만을 가지고 황금문을 드나들면서 걸인들을 외식적으로 구제하였습니다. 이 거지는 허영심을 가진 예배자들의 또 다른 면입니다. 허영으로 가득한 종교인들의 가난한 속마음입니다. 이 절묘한 그림에는 인간의 죄성이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허영, 다른 한 편으로는 요행을 바라는 절망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미문으로 들어가다 이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성전 미문을 드나들면서 생존을 위하여 앉아 있는 거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도는 그 거지에게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행전 3장 4절).
무엇이 그동안 무심했던 관계를 생명으로 인도하였을까요?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자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생명을 나누고, 복음의 교제와 기쁨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장 43~47절). 오순절을 경험한 사도들은 어제의 사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큰 인생의 짐도 성령을 받으면 그것이 인생의 날개가 됩니다. 성령 받은 사도들이 주목하여 바라보고 부르자, 생존을 위해 미문 곁에 던져져 있던 인생이 참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3장 6~10절).
에스겔은 골짜기 안에 가득한 뼈들이 하나님의 영이 불자 극히 큰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에스겔 37장 1~12절). 하나님의 말씀이 던져지면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줄기가 솟아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화려하고 웅장한 골든 게이트 옆에서 종교적인 형식은 갖추었지만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앉은뱅이 형국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삼천리반도에 불어 임하면 회복되어 ‘군대’로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생명이!
앉은뱅이가 참된 예배자로 일어난 사건은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던질까요?
이 이야기는 먼저 한 개인의 치료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령이 임하고 난 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천명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처한 사회에는 영적 죽음의 질병이 가득 차 있어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어 보입니다. 마치 황금으로 덧입혀진 아름다운 외형을 가지고 있으나 사실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신음하는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소망이 없이 짙게 썩어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절망 중 새로운 회복을 약속합니다. 골짜기의 생기 없는 뼈들처럼 죽어 있었더라도, 성령께서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서는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시길 기대합니다. 위로부터의 감동, 위로부터의 회복, 위로부터의 따뜻함이 임하여 진정한 생명의 역사로 채워지길.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CBS ‘성서학당’의 인기 강사. 그의 이름 뒤에는 늘 ‘신학생들이 열광하는 설교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말씀에 대한 깊은 헌신이 있는 목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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