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1987년은 어떤 해였나요? 또는 어떤 해라고 생각하나요? 1987년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좌우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떠나, 그 해는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리더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요. 즉, 1987년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그 국민이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참여하겠다는 선언적인 해입니다.

뜨거웠던 그해, 1987년
그 뜨거웠던 시기를 그린 작품 <1987>. 동시대를 살았던 관객으로서, 그 기억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품을 그저 이성으로만 마주 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본영화가 끝나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관객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또 이후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여타영화와는 달리 묵직합니다. 1300만 관객의 신파극 <신과 함께>처럼 관객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제발 좀 울어달라고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는데, 이 영화는 관객 눈가를 촉촉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일단 2017년을 지나 2018년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결코 1987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고, 더불어 빚진 마음이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물론 그런 격변의 시대에도 나라 돌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학업·고시·취업 준비로 자기 앞가림하는데 몰두했고, 나이트클럽은 젊은이들로 여전히 붐볐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광장으로 나서며 시대를 걱정했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이 결국 오늘을 있게 만들었습니다.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이 노랫말처럼 ‘그날’을 소망하며 앞장섰던 자들의 희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영화가 이걸 다루는 방식이 약간 독특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이한열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동안, 영화 <1987>은 특정 영웅적 주인공에게 몰두하지 않습니다. 스물두 살 대학생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박 처장과 대립각을 세운 최 검사를 시작으로, 동아일보 윤 기자, 한병용 교도관, 재야인사 이부영과 김정남, (시나리오에 적시한 대로) ‘잘생긴 남학생’, 그리고 대학 신입생 연희까지 배턴 터치하듯 차례대로 이어집니다. 한두 명의 영웅에 의해 이뤄졌다는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의 힘이 그해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한 명의 작은 몸부림이 그다음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 움직임이 또 다른 이에게 연결되는 연쇄반응이 반복되면서 그 거대한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거죠.

증인과 목격자
그러는 동안 관객은 <1987>이 맨 마지막에 내세우는 인물인 연희에게 자연스레 감정 이입하게 됩니다. 연희는 영화 속 여타 인물과는 다른 자세를 취합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당시를 증언합니다. 즉 증인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영화 내내 한결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연희는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목격자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만섭이 그랬듯이, 목격하기 전의 연희와 이후의 연희는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라고 냉소적이게 되묻던 학생이 이제는 ‘그날’을 기대하며 당당히 시위대 버스 위로 올라섭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날’은 무엇인가요? 특히나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크리스천에게 ‘그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 답을 찾기 전에,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신앙생활 아니겠습니까? 신앙은 답이 아니고, 과정인 게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날’을 염원하며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오늘’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죠. 질문하길 멈추고, 답을 찾았다는 오만함에 빠지는 순간, 우린 물고문 현장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읽는 경찰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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