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익숙한 것부터 '바꾸기'-‘지금 나의 기대가 적절한가’ 물어라

새해를 맞으며 올해는 새로 해야 할 일을 계획하기보다, 나이 대에 맞게 삶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야구 감독이 타자에 맞춰 야수들을 재배치하는 것처럼 나이 듦에 따라 적절한 시프트(변화)를 두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 여겨져서다.
아이들이 얼마 전 다녀가며 다 큰 자신들을 어린 애처럼 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일이 떠올랐다. 일 년 중 만나는 며칠, 시간만 나면 어릴 적 해온 대로 조금 더 가르치고 알려주려 하는 모습이 찌푸린 얼굴을 보면서야 멈춰지곤 했으니.
‘너희들 위해서인데~’
그리고 마음은 우울해졌다.

자꾸 가르치려는 자세는 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자녀의 삶에 대한 기대, 완벽을 향한 추구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 박사는 “부모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자녀들에게 ‘기대감’으로 몰려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기대가 지나치면 ‘다른 사람을 내 마음에 맞게 고치려 하게 된다’면서 남을 통제하려는 사람의 위험성까지 덧붙이고 있었다.
또 부모의 높은 기대치를 지고 사는 사람은 늘 짐이 무겁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기 쉽지 않다는 말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내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식구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 사이에 채워지지 않던 갭으로 얼마나 헛헛한 시간을 가졌던가. 이런 사람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 그 기대를 채우려 공부나 일을 채근하게 되고 지시하게 된다니 나의 과제도 이렇게 연결된 것인가. 기대를 많이 하는 것이 단순한 성향이 아닌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 기대를 다른 사람이 채우길 원하는가
이런 사람은 자신의 기대를 정당하다고 여기며 상대를 바라보다 그에 못 미치면 무기력해지거나 낙심하며 상처를 입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관점에서 노력하며 희생하는 중에 그것을 알아줄 기대를 주관적으로 가지다가, 상대방이 그 기대를 잘 모를 때 갈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의사 표현 방식은 대체로 비난 형으로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하므로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 굴레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무엇보다 일상을 성실히 사는 가운데 작은 일들을 통해 성취를 맛보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 되는 것이 변화의 힘을 얻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나 자체가 생명력이 되어 스스로 기대들을 충족하게 되면 남에게 지나친 기대로 짐스럽게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가끔 ‘지금 나의 기대가 적절한가’를 질문해보는 것도 좋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기대하는 것을 표현하고 요구하기보다 상대방이 알아서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 역시 고단한 관계를 만들 수 있으므로 기대 충족의 조화를 위해서 차라리 ‘힌트’를 주며 요구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 된다.

내려놓음과 비슷한 건가
기대를 낮추려다보니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내려놓음은 욕망을 비우거나 행복을 포기하는 것과 달리 주어지는 어려운 일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해나가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허락하신 것에 순복하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시편의 말씀대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자기의(自己義)와 내가 가지고 싶은 자기애(自己愛)를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검증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타이밍과 방법까지 맡기는 것이라고. 새해, 기대를 낮추려는 자세에 결론을 주는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행위’를 지혜로운 삶이라 말했다. 자신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위험이 눈앞에 와도 볼 수 없다.
나를 정체시키지 않고 새롭게 일궈가는 동안 힘이 들고 상처도 입겠지만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맛보게 될 것을 또 기대한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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