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가정에서 15년 이상 보살피며 필자는 경험으로 ‘치매와 동거하기’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치매가 고령화 사회의 불청객인 것을 인지하고,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섰다. 연재를 통해 어머니와의 행복한 동행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오빠!”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부르셨다.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가족을 타인으로 인식하고,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고, 15년 전 만났던 사람과 지금 ‘가상 만남’을 갖고, 시간과 날짜를 멈추게 하는 질병, 치매…. 어머니를 통해 경험한 불청객 치매는 참 몹쓸 병이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 어머니에게 바르게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는 잠시 어린 시절로 소풍을 가셨던 모양이다.
“어머니, 저 아들이에요.”
“어, 아들이야, 내 아들. 내 배로 난 내 아들, 나관호!”
예고 없이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 증세는 며칠 동안 내 발목과 가족의 가슴에 자물쇠를 채우기도 하고, 폭풍 같은 번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이제 어찌하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
치매는 다음날도 활동이 계속됐다. 어머니에게 손녀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이웃집 아이들’이 되었고, 며느리는 ‘빵 가져다주는 옆집 아줌마’가 되었다. 그리고 시집 간 여동생은 ‘초등학교 학생’이 되었고, 사위는 ‘누구야?’가 되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아들인 나를 ‘오빠’라고 생각하시다가도 정정해드리면 당신이 고생해서 낳은 아들만은 잘 알아보셨다. 치매의 수렁에 계실 때 어머니에게 가족은 나 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고부터 나는 어머니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며칠 동안 어머니와 나를 공격해 온 치매를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응원가를 불러드리고 싶었다.
“그래,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아드리자. 내가 대신 싸우자!”

치매와의 선전 포고
그 후부터 내 삶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어머니의 불완전한 상태에 끌려 다니지 않고, 치매 앞에 어머니와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 먼저 어머니의 자기 존재 인식을 바르게 해드려야 했다. 자신의 모습, 현재 상태, 잊힌 어머니의 이름부터 찾아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대고 말했다.
“어머니, 제 눈을 보세요. 아들이에요. 어머니 이름 말해 보세요.”
“내 이름은, 어… 박정열. 맞아, 박정열.”
“잘하셨어요, 어머니. 최고예요.”
“호호호. 그리고 내 아들 이름은 나관호.”
어머니에게 칭찬요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최고예요. 예쁘세요”라는 말로 어머니를 웃게 했다.

아버지 사랑은 영원한 노래
어머니가 똑바로 기억해 말씀하시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옛 추억이다. 결혼 후 한동안 태기가 없어 어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아버지는 외아들이셨기 때문에 대를 잇는 문제에 민감하셨던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바람 앞에 촛불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기를 가지셨지만 자식 넷을 모두 잃어야 했다. 다섯째인 내가 장남이 되었고, 내 밑으로 딸 하나를 더 잃으셨다. 그때 어머니의 몸과 가슴속에는 뜨거운 한이 숨어 들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끝까지 지켜주고 인내하셨으며, 어머니 몸보신을 위해 지구상의 좋은 것은 모두 가져다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말씀만 하시면 그 부분은 영원한 후렴구다. 가슴속에 심겨 있는 깊은 사랑과 감동은 무너진 뇌세포도, 치매도, 흘러가는 시간과 혼동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으로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응원가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응원가 제목은 ‘빚진 자가 드리는 손길’이고, 리듬은 ‘사랑과 감동’이다.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이 응원가가 힘이 되었으면 한다.

나관호
‘좋은생각언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조지뮬러영성연구소’ 대표소장이며, 목사, 문화평론가,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추천 우수도서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생각과 말을 디자인하면 인생이 101% 바뀐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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