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억한다는 것

일본 소설가 텐도 아라타에게 나오키 상을 가져다준 작품 <애도하는 사람> 속 주인공 시즈토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청년이다. 그가 애도하는 대상은 전혀 친분이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신문이나 방송이 보도한 사건 사고 현장의 고인들이다. 시즈토는 고인들을 애도하기에 앞서 그 사람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정보를 조사한다.

첫째, 고인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가?
둘째, 고인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셋째, 누가 고인에게 감사했는가?


시즈토에게는 이 세 가지 정보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한 사람에 대해 기억해야 할 단서들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고인을 애도한다. 그러므로 시즈토는 고인을 바라볼 때 세 사람의 입장에 서는 셈이다. 즉, “당신은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며,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며, 당신은 내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당신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시즈토는 고인을 향해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이런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이해의 방식
우리는 한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대개 한 사람의 공과를 따져 그 경중을 셈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런 셈법을 통해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이해의 깊이와 넓이를 달리한다. 이런 이해의 방식은 시즈토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각에 비해 얼마나 가소롭고 유치한가.
시즈토에게 애도의 의미는 고인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로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금세 잊히기 마련인 한 사람의 죽음을 특별한 일로 ‘기억’하고, 고인의 삶에 존재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곧 요것조것 셈하여 평가하는 세속의 잣대를 허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쓴 텐도 아라타는 한 인간의 죽음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이고, 또 그해 10월 미국이 보복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한 일이다. 텐도 아라타는 이 두 사건이 모두 엄청난 인명 살상을 가져왔음에도 신문과 방송을 지배하고 대대적인 주목을 받는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이 있음을 목격했다. 죽음마저 차별하고 비교되는 세상이 그로서는 의아했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가 정해 놓은 죽음의 가치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가, 물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경중을 따지는 행위는 결국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숨에 대해서도 경중을 묻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누구 한 사람만큼은 고인을 찾아가 차별이나 구별 없이 애도해 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시즈토란 인물을 탄생시켰다. 어떠한 죽음이든 공평하게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의 무게와 동일시한 창조주 하나님의 관심이라고 볼 때 그의 작품은 시즈토란 위대한 성직자의 탄생을 인류에게 선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시즈토를 통해 한 영혼을 향한 창조주의 따스한 사랑을 느낀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감사의 대상이었던 한 영혼을 주목하시는 분, 그분이 곧 나의 창조주라는 사실 앞에 벅차오르는 위로가 스민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
한 사람을 창조주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의 태도는 고인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다. 오늘 당장 내가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던져야 할 공통의 질문은, 그가 얼마나 배웠고, 그의 소유가 얼마고, 그의 지위는 어떠하며, 그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가를 묻기 전에, 그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을 받으며, 누구에게 감사의 찬사를 듣는 사람인가를 물어야 한다.

정작 한 사람에 대해 기억해야 할 정보 중 이보다 우선하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하여 다음 질문을 통해 우리의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을 기억해보자. 그는 누구에게 사랑받았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의 감사를 받고 산 사람인지를.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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