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지난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였다. 모를 심고, 물을 대고, 가뭄에 논바닥이 마르면 타는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였다. 이제 가을걷이를 마친 농부들은 제각각 가족들과 재잘거리며 웃고 있을 게다.

농촌 교회에 부임하여
20년이 흐른 셈이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 목회를 시작한 그때는 서른이 갓 넘은 때였다. 그 무렵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었고, 농촌생활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선배가 교회를 떠나야 할 상황이었고, 아무도 농촌교회에서 오래 목회하려고 하지 않았다. “선배, 후임자는 나타났어요?” 하고 물었을 때 선배는 친절하게도 “왜? 네가 오게?” 하고 되물어주었다.
애송이 같은 내가 지금의 교회에 부임할 때 딱 하나만 약속했다. 십 년은 넘기겠습니다, 라고. 무엇보다 오래 함께 살지 못하면 인생의 속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목회란 인생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일인 셈이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남편의 뜻을 좇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도시 교회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을 끊고 자립하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 우리 가족이 먹을 양식은 우리가 재배함으로써 자급자족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좁은 땅을 얻어서 마을 어르신들께 하나하나 여쭤가며 작물을 키웠다.

논과 들에서 일할 때 나는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 동질감이 좋았다. 짬을 내어 성경을 연구하며 가족들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짓듯 설교를 지었다. 나의 설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의 언어와 문법에 잘 물들었고, 어르신들 몇 분은 “성경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기뻐했으므로 나는 행복했다.
마을에 온 지 몇 해 지났을 때 우리 마을에서 생산한 작물의 판로를 뚫어보고자 도시 교회와 직거래를 텄다. 도시 교회에서 우리 마을 농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애송이 같은 나는, 하늘같은 선배 목사님 앞에서 악다구니를 부리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을 때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십 년을 채웠다기보다 앞으로 십 년을 살 기반을 닦았다는 데 감사하였다.

도회지 교회에서 청빙을 받고
십 년을 보내고 다시 십 년을 보내는 일은 처음 십 년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면서 직거래 열기도 시들해졌다. 사람들의 기대는 컸으나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느라 헉헉댔다. 마을 사람들도 도회지로 아이들을 보내서 공부시켰으나, 우리 아이들은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느새 우울한 기운이 설교에도 스미었고, 내가 차린 설교의 밥상은 윤기를 잃어갔다.
그 때 도회지 한 교회로부터 청빙 요청이 왔다. 선배 목사님이 재촉해주었다.
“이제 그만하면 됐어. 좋은 자리니까 올라와.”
이 마을에서 보낸 20년 세월을 놓아줄 때라 생각했다. 예배 후에 교우들에게 내 뜻을 이야기하자 느닷없었던지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점심 식탁은 초상집 같았고 아이들 몇몇이 깔깔거려서 나는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마음을 붙여야 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마을에 오셔서 너무 수고하셨다고 하나님이 좋은 데 보내시는 거데이.” 은퇴하신 장로님이 무거운 분위기를 수습하듯 당신의 마음을 누른 채 입을 여셨다. 그때 권사님 한 분이 “내가 뭔 놈의 자격으로 따신 밥을 또박또박 받아먹었는지…” 하시고는 마른 손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따신 밥’은 내 설교를 일컫는 말이란 걸 아는 사람은 알았다. 나는 권사님 손을 잡고는 다음 이야기를 해드렸다. 어느 책에서 오래 전에 읽은 내용이었다.

“권사님,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진수성찬이 나온대요. 그런데 이 진수성찬을 받은 한 죄수가 식탁 앞에서 감사기도를 드리다가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어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살고 있는가. 그런데 죄를 짓고 들어와 있는 나에게 진수성찬이라니. 그래서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을 못 먹었대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는 기도를 하면서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정성껏 이걸 준비했을까, 감사하더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이 깨달았대요. 자신이 자격 없다는 것만 생각했을 뿐 정작 음식을 차린 사람의 마음은 몰랐던 거죠. 요리하는 사람은 감사절 식탁을 준비하면서 그 식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을 떠올리지는 않았겠죠. 아마 우리 하나님도 그럴 것 같아요. 애초에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린 감사하며 먹을 뿐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깜짝 놀랐다. 정작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앞에 차려진 식탁을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빈 들녘에 황혼이 깃들기 시작한다. 텅 빈 마음 한쪽으로 저녁놀이 물들고 있다. 무엇 하나도 내가 자격이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나는 그저 감사할 일이고 침묵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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