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가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져있을 때, 이순신을 영화화한 <명량>은 진도 앞바다가 비극의 바다가 아닌, 기적의 바다임을 알려줬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1800만 명 가까이 봤다는 것은, 당시 한국사회가 그만큼 동시대의 비극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민족의 무능력과 무기력함을
올해 추석, 조선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임금 중 한 명인 인조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인조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항복했던 ‘삼전도의 굴욕’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은 우리 민족의 무능력과 무기력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명량>이 ‘국뽕’(국가와 마약을 조합한 신조어로 민족적 우월성을 자극하는 것을 일컬음) 영화의 극치라면, 이 <남한산성>은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서 있습니다.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 균형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등극하면서 명쪽으로 급격하게 조선의 외교 균형추가 기울어지자, 청태종은 군신의 예를 요구하며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예조판서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파는 끝까지 맞서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화파인 이조판서 최명길은 항복해 백성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강변하지요. 이 둘 사이의 ‘100분 토론’(?)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남한산성>입니다.
당시에 이미 세가 기울어버린 명나라를 끝까지 부여잡고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둔감했던, 아니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눈을 감아버렸던 인조정권의 척화파를 생각하면 맘이 답답해집니다. 당시 척화파는 조선을 섬겼던 것이 아니고, 이빨 다 빠진 명나라를 하늘로 섬겼던 게 아닌가요. 그들 사대부의 충성스러운 절개는 결론적으로 조선을 도약시키는 데 걸림돌이었습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진 않지만,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서구와 교류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청의 실상을 목격하고 오히려 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청은 더 이상 깔볼 수 있는 오랑캐가 아니었던 거예요. 이후 9년 만에 인질에서 풀려난 소현세자가 귀국해 청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말하니, 삼전도의 굴욕을 기억하고 있는 인조 입장에서 그리 달갑진 않았을 테죠. 결국, 소현세자는 귀국 2달여 만에 의문사를 당하고, 인조는 청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을 세자로 앉히게 되는데, 그가 바로 북벌정책을 계획했던 효종입니다.

과거는 해석되어야 할 주관적 텍스트
이렇게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갈팡질팡했던 조선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영국 역사가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강조하면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역사는 그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주관적 텍스트인 겁니다.
<남한산성>이 그리고 있는 상황이 미·중·일·러 세계 초강대 4개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우리네 현실과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인조는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 질서에 편입하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과 명분이냐, 실리와 균형이냐.” 발 빠르게 급변하는 관계 속에 과거에 사로잡혔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영화 <남한산성>은 특별합니다. ‘국뽕’ 역사영화가 당장의 기분은 좋게 만듭니다. 그런데 역사 속 영웅들이 “우린 할 수 있었는데, 너희는 왜 못 하냐” 하는 거 같아 뒷맛이 개운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그리고 있는 역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이렇게 실패했으니, 너흰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마라”라고.

이러한 딜레마와 선택의 문제가 그저 역사나 외교 관계에 국한된 건 아닙니다. 인간의 역할이 현저히 감소되는 4차 산업혁명, 물질이 정신을 뒤흔드는 자본주의적 가치, 무한 경쟁을 자극하는 신자유주의 질서, 취향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등 이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는 게 요즘의 우리 현실입니다.
끝으로, 교회 또한 지난 수십 년간 무수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우린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그릇과 수단은 늘 변하겠지요. 그러나 말씀의 중심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