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독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필자 기쁨지기는 많은 독서량뿐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책을 권하는 삶을 살고 있어, 우리가 원하는 ‘북 소믈리에’라 할 수 있다. 그가 권하는 향기로운 책을 만나보자.

내 깊은 갈망의 답을 찾아서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포이에마

기독교출판계에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이비드 그레고리가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출간 이후 5년 만에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을 들고 한국 독자들을 만나러 왔다. 이 책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예수와의 뜻밖의 만남을 통해 겪는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스물아홉 살 여성 ‘엠마’.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 그 충격 속에 버둥거리며 답을 찾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 1부의 초대장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세상이 끝나버린 건 아니었다. 끝난 건 내 세상뿐이었다.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뻔한 얘기로 날 위로하려 들었다.
“그런 자식은 없는 게 나아. 두고 봐, 앞으로 더 잘될 테니까.”
“길에 나가면 깔린 게 남자야. 무슨 걱정이니?”
자신의 일기에는 흔하디흔한 다짐문구가 줄을 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법,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직 누군가를 만나 결혼할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일에 집중하는 계기로 삼아야지.”


하지만 이런 값싼 위로나 자기 확신이 엠마에게 와 닿지 않았을 것은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함에 손글씨로 쓰여진 편지 한통이 들어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가장 가까이에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세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진짜 모험이 시작됩니다”라는 글이 적힌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문 안으로 들어간 엠마는 순식간에 1세기로 빨려 들어갔다. 다름 아닌 예수님과 복음서의 여러 장면들을 돌아보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폭풍우 치는 갈릴리 호수, 한낮의 우물가, 향유 냄새 가득한 방, 골고다 언덕과 빈 무덤까지, 복음서 속 현장을 예수와 함께 걸으며, 엠마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이해하게 되며, 하나님이라는 존재 안에 머무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막연한 복음에 대해서, 또 크리스천이 된다는 말의 참뜻과 관련해 엠마가 가지고 있던 인식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치명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현대인 엠마를 통해 물음을 던지는 저자는 오늘날 현대 크리스천들이 일상에서 갖는 숱한 질문을 예리한 송곳 같이 퍼붓지만 엠마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별처럼 살다간 한국최초의 여의사

<예수씨의 별>
이건숙 지음/320쪽/크리스천문학나무


한국기독문단의 원로작가인 소설가 이건숙 씨가 신작소설을 발표했다. 한국 최초 여의사 김점동(金點童) 세례명 박에스더(Esther Kim Park)를 조명한 전기소설이다.
김점동은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에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의 통역으로 일하던 중 인생이 바뀔만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의 의술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언청이라고 불리던 불치병을 서양의사가 수술해 낫게 하는 것을 본 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던 중 윌리엄 홀의 중매로 박유산 청년을 만나 1893년 한국 최초로 교회에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고, 이때부터 남편성인 박씨와 세례명인 에스더를 합쳐 ‘박 에스더’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19살 때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896년 만 20세가 되던 해에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에 최연소로 입학하게 되었고, 박유산은 뉴욕의 농장에서 일을 하며 그녀를 뒷바라지했다.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해 9월부터 병원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했고, 엄청난 노력 끝에 4년 만에 의과대학을 졸업,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었다.

아쉽게도 남편은 그녀가 졸업하기 반년을 앞두고 폐결핵에 걸려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꼭 의사가 되라”는 남편의 유언대로 1900년 6월 한국 여성 최초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에스더는 미국에서의 보장된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을 맡아 운영하였다. 평양에 부임한 지 10개월 동안 진료한 환자가 3천명이 넘었을 정도라니 얼마나 열정적인 의사였는지 알만하다.
평양의 여성치료소인 광혜여원(廣惠女院)에서도 진료했으며, 그때 황해도와 평안도 등을 순회하면서 무료진료를 했으며, 동시에 홀 여사가 세운 기홀병원 부속 맹아학교와 간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진료 외에도 근대적 위생 관념을 보급하는 활동을 펼쳤고, 또 인공관을 이용해 방광질 누관 폐쇄수술을 집도하는 성과도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의료 활동을 벌이던 그녀는 질병이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 질병은 바로 폐결핵이었다. 결국 1910년 4월 13일 서울의 둘째 언니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나이가 33세. 자식도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한국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한국의 결핵환자들을 위하고 또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매하게 되었다.
예수의 씨앗처럼 살다간 김점동에 대한 흩어진 자료를 모아 청일전쟁, 동학농민 전쟁 등 격변기 조선에서 별처럼 살다간 한 여인의 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현호
기독교전문서점 기쁨의집 대표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독서운동과 문화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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