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하로(冬扇夏爐)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라는 뜻이다. 추운 겨울에 부채, 그리고 더운 여름에 화로는 별 필요 없는 것들이다. 이런 이유로 동선하로라는 말은 ‘별로 유익이 되지 않는 재능이나 문제해결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의견’을 말한다.
삶에 있어서 지금보다 줄이거나 멀리하면 좋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말’이다. 사실 ‘말’이란 꿀과 침을 동시에 갖고 있는 ‘벌’과 같다. 그런 까닭에 사용여부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문제는 사람이 말을 배우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하지만 그 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를 해도 참 모질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혀 안에 도끼를 지닌 사람들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폭력은 말로 사람을 절망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분노’이다. 분노는 일종의 광기(狂氣)이다. 분노만큼 위험한 습관은 없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오해와 증오뿐이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탁월한 장군 오셀로가 자신의 착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하게 된 것이 불같은 분노였음으로 증명된다. 그래서 우화작가 라퐁텐은 <주피터와 천둥>에서 “분노는 문밖에 재워야 한다”라고 교훈한다.
분노의 대척점에 ‘너그러움’이라는 덕목이 있다. 너그러움은 분노를 제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품격이다.

그 셋째는 ‘과욕’(過慾)이다. 알맞은 욕망은 사람을 생동으로 이끈다.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욕망은 탐욕에서 기원한 것이기에 통제가 필요하다. 적당한 바람은 꽃을 피우지만 거센 바람은 그 꽃을 부러트린다. 잘 다루지 못한 욕망도 이와 같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욕망이 높아질수록 그대가 묻힐 무덤은 깊어진다”라며 과욕을 경계했다. 늪에 빠져 죽은 자보다 과욕에 빠져 죽은 자가 많다는 사실에 전율해야 한다.

이제 몇 개의 잎사귀만 위태로이 붙어있는 나목(裸木)으로 사는 늦가을이다. 월동을 위해 불필요한 잎사귀를 다 떨궈 내는 그 나무처럼, 삶에도 생략, 곧 ‘간추림’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말, 분노, 과욕을 감량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삭제하는 자신만의 월동준비, 이제 시작해보자.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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